내집 거실 한켠엔 치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 푸르스름한 도자기 화분에 심어져 있는 치자나무는 주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여름 생일선물이라며 치자나무 화분을 안고 들어와 내게 불쑥 안긴 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 거다. 오래 전 한여름에 목포의 어느 거리를 거닐다 달콤한 향에 이끌려 갔다가 순백의 꽃을 발견했다. 그땐 그 꽃이 치자꽃인 줄 몰랐다. 향이 어찌나 강렬한 지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였다. 그 향에 취해서 나른한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지금도 목포를 생각하면 숨막힐 듯 달달한 치자향이 떠오른다. 올 여름엔 나의 집도 치자향으로 물들 것이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대단한 치자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고 또 방심했다 하면 발에 동상이 걸리는 탓이다. 오직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몽환적인 눈의 세계 '설국'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것 뿐이다. 겨울에 들어서면서부터 '언제 봄이 오나'를 되뇌이며 설레발을 친다. 봄이 오면 또 여름을 마냥 기다린다. 늘 이런 식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나는 타고난 비관주의자인가. 춥다. 춥고 쓸쓸하고 심사가 베베 꼬이기만 한다. 대통령을 잘 못 둔 나라 탓이기도 하고 내 탓이기도 하다. 부지할 곳 없고 숨쉴 공기가 모자라 갑갑증만 쌓여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다. 의지할 만한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배병우의 사진작품으로 유명한 경주 남산의 소나무들은 한반도의 굴곡진 역사성을 드러낸다. 세계와의 불화로 단단하면서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소나무는 천년 신라의 애환이 서려 있다. 손을 대면 뜨거운 피가 흐르고 거친 숨소리가 들릴 것 같아 움찔하게 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아! 그때도 겨울이었지. 안개 자욱한 선덕여왕릉 주변을 서성이며 숲의 정령, 소나무들과의 조우를 잊을 수 없다. 겨울의 소나무숲은 써늘하고 담백하다. 그 숲에서, 공기와 햇볕은 소란스럽지 않다. 푹신한 솔가루를 밟으며 고통의 외마디는 잦아들고 땀흘린 노동의 대가를 애써 구해선 안된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키 큰 안면송은 잔가지도 없이 고고하게 홀로 존재하나 보다.
▲가는길=승용차는 대전~당진 고속도로를 타면 안면도까지 2시간 소요, 공주, 청양, 홍성을 거치면 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대전복합터미널서 첫차가 7시 40분으로 대전~당진 고속도로로 가면 안면도가지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서해바다는 사시사철 먹거리가 풍부하다. 겨울의 안면도는 꽃게 철이다. 탕과 찜과 게장이 있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향토음식 게국지가 있다. 게국지 식당이 어딜가나 즐비하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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