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화가 |
대통령이 그 신파극의 주인공처럼 언싱커블(unthinkable)한 상상할 수도 없는 국정농단을 저질러, 가라앉지 않을 언싱커블한 분노로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밤 광화문 광장과 전국 곳곳을 밝혀가며 변심한 대통령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잘난 정치인들이 조금이라도 제 몫을 다했다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국민감정이다. 대통령은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었습니다'는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러나 신뢰를 저버린 책임을 어떻게 진다는 말은 없었기에 국민적 분노로 변해 촛불을 밝히게 된 것이다. 결국 국민은 죽은 아버지의 얼굴로 꾸민 희망소비자가격의 과대포장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대통령의 지극히 염치없는 소행을 두고 격분을 넘어 퇴진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을 모르는 신파극 주인공과 다르지 않아 격분이 가중된다.
막스 레거의 '레퀴엠(Requiem)'은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다. 그러나 레퀴엠의 클라이막스는 끝없는 사막의 황무지에서 절정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또 촛불시위와도 같은 반복의 수사학적 연주가 바로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Bolero)'다. 지속적인 반복의 연주는 무려 18번이나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볼륨감으로 감상자를 꼼짝못하게 휘어잡는다. 작금의 촛불행진이 그 중간쯤에 와 있다고 여겨진다.
변심한 애인같은 밉고 싫은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자식 교육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재산을 해외에 축재해온 강남아줌마 최순실과 국정을 의논했었으니, 국민들이 가족동반으로 남녀노소가 너도 나도 촛불집회에 참가할 수밖에 더 있었으랴. 국민들이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결론에 처했다는 것은,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대통령의 격을 한없이 추락시켰던 모든 사항들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것이며 결국 악의 깊은 수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과, 작은 바늘 구멍이 댐을 무너지게 한다는 격언을 떠올릴 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더 큰 국가적 혼란을 생각해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자기와 같은 대통령은 이번 한번으로 충분하다는 성찰을 국민 앞에 분연히 보여, 귀감을 삼을 수 있게 했었다면 지금같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변호인들까지 내세워가며 과연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승화된 의식에도 한계가 있다. 아름다운 방법으로 결별을 요구했을 때 멋진 퇴진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역사에 맡겼었더라면 대한민국의 국격이 세계만방에 다시 보여졌을 것을. 국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어김없이 이번 주말에도 또 한 번의 진혼곡이 있을 것이기에….
정명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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