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국회의원 |
'1만3513'과 '37'. 앞의 숫자는 작년 한 해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망자 수다. 뒤의 숫자는 1일 평균 자살 사망자 수다. 약 40분에 한 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이고,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원인 2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높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인자살률이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201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55.5명으로 국내 전체 자살률에 2배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살률 12명에 비해 5배에 달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유독 우리가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는 주로 개인적인 심리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다. 자살 보도에도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인 요인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직, 빈곤,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배경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자살률이 급증했다. 1995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0명 안팎에 머물렀지만, 2012년 29.1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988년 이후 급증한 실업, 저임금, 빈곤, 불평등 등 사회구조적 모순이 개인과 가정에 농축돼 나타난 결과가 자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에서도 자살이 사회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다는 점이 잘 나타나 있다. 1980년대 이후 자살률과 실업률 변화와는 양(陽)의 관계이고, 소득분배상태와 자살증가율과도 양(陽) 관계, 가계부실정도와 자살증가율과도 양(陽)의 관계로 나타났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클수록, 가계가 어려울수록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1995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자살률은 정부의 자살종합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자살원인은 실업, 소득상실 등 경제적 어려움, 질병 등 의료비 부담, 경쟁심화로 인한 스트레스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인데, 정부 대책은 개인 심리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보니 자살의 심각성에 비해 관련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2012년 기준으로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6조4769억원라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8년까지 자살률을 OECD 평균수준으로 낮출 경우, 연간 최대 1조6000억원의 편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올해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사업예산은 85억원으로 지난해 89억보다 4억원이 줄었다. 이는 자살예방에 3000억원(2013년 기준)을 투자하는 일본에 비하면 3%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인데도 자살예방정책 구색만 갖췄을 뿐 이를 실행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전히 국가의 적극적인 예산지원이 아쉽기만 하다.
자살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제대로 된 정책 시행과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다.
우선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 및 지역정신보건사업'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복지부의 예산확대는 자살률이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과도한 입시경쟁교육 완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군 체계 개선 등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가 자살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 소관 사업에서도 자살예방이라는 관점에서 특히 노인 복지 분야의 사업들에 대한 재정 투입을 늘려야 한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도 기초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 지급을 확대하고 노인들에게는 건강보험료를 면제 또는 경감하고 노인 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80% 이상 수준으로 높여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흔히 자살률 1위를 불명예라고 하지만 40분에 한명씩 자살하는 현실은 단순히 불명예가 아니라 참담한 비극이다. 이젠 비극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양승조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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