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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핸들링이다. 인생을 말함에 있어 주님은 물론 동서고금 수많은 현인, 석학, 철인, 문인 등 뛰어난 인물들이 이 어찌 한마디로 말 할 수 있었단 말이가. 천부당 만부당할 말이고 말고. 그리고 인생을 수천 수만가지의 색깔과 옷을 입혀 보아도 남는 건 의문(?)일 뿐. 안개 속을 헤매이는 것과 다름없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인간의 숙제가 아닌가.
필자가 ‘인생은 핸들링이다’라고 모두의 화제로 삼은 까닭은 별 것 아니다.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는 두 바퀴와 핸들로 움직인다. 그런데 주인공이 잠간의 실수로 핸들의 균형을 잃게 되면 비틀비틀 거리거나 자빠지게 된다. 이렇듯 두바퀴와 체인도 중요하지만 주인공이 잡고 있는 핸들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핸들은 유연성과 균형을 필요로 하는 도구이다.
이 유연성과 균형, 특히 균형(감각)이 삶을 살아 나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필요 충분 조건이 된다. 균형감각을 잃은 사고와 행동은 자신은 물론 가정과 이웃. 나아가서는 국가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악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 균형을 다르게 표현하면 중용일 수 있고 자연의 이법을 따르는 마음가짐이고 자세라 할 수 있다. 중용中庸을 우리는 입에 자주 떠 올린다. 그러면서 정작 진실한 중용의 미덕은 잘 모른다. 그저 이쪽에, 저쪽에 서지도 않고 몸보호하는 눈치보기의 요령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일반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중용의 ‘中’은 치우치지 않는 것, 그래서 中은 천하의 正道이고. 중용의 ‘용’庸은 천하의 定理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理法을 자연스레 잘 따르는 것이 참 중용의 길일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 하였다. 곧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하였다. 또 “苛政은 猛於虎也이니라”<禮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나운 것이다”라고 했다.
스턴트맨, 스파이더맨은 균형을 잃으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실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서운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전철이나 기차역을 오르는데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 누가 시키지도 안았는데 모범적인 우측 정렬이다.
참으로 기막히다. 지키라는 주차질서 따위는 죽어라고 지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두줄로 서서 오르내려야 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죽어도 상관 없다는 듯 한결같이 우로 정렬이다. 지극히 일부의 보기를 들었지만 우리의 사회는 균형감각과 자연의 이법, 그리고 준법을 개똥취급도 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뭐가 언제 부터인가 당연한 듯 교만을 떨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했듯이 이나라의 정치가 가혹하고 위정자들이 그러하다.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무법, 떼법, 탈법을 백주 대낮은 물론 심야까지고 선동을 일삼으며 나라 어지럽히는데 마치 열사처럼 광기들을 부리고 있다. 균형감각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으로 기가 차고 기가 막히는 이나라의 암담한 현실이다.
입만열면 ‘국민, 국민’ 제발 비노니 그 위선적이고 제대로 확인되지않은 당신들만의 국민을 부르고 외치지 앟았으면 좋겠다. 그것만이라도 지켜주면 일말의 양심이 조금만이라도 살아 있다고 여겨줄 터이니까.
언제나 우리 가정과 이웃, 그리고 국가사회가 순리에 따라 중용을 지켜가며 핸들을 잘 잡고 안전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인생의 핸들링을 운영해나갈 것인가. 맘 굳게 먹고 인생의 핸들링을 멋지게 그려가는 언제인가의 그때가 그저 그리울 뿐이다.
김선호 전 한밭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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