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시간의 틈, 오늘의 행복이 흐르는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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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시간의 틈, 오늘의 행복이 흐르는 한옥마을

밤이 찾아오면 온전히 눈에 들어오는 한옥마을만의 매력 '한국 최초 순교터' 전동성당, 풍남문과 오목대 등 예스러운 낭만 어우러져

  • 승인 2016-12-22 19:07
  • 신문게재 2016-12-23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 전주 한옥마을의 야경

한 해가 일주일을 남기고 저물어 간다. 365일은 작심삼일의 물거품 같은 꿈을 꾼 장삼이사든, 1분1초가 아쉽도록 부지런히 살았던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유유히 흘렀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대로 12월 23일을 맞았다.

하루도 일 년처럼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여름엔 오후 8시가 다되도록 낮 기운이 펄떡이더니 동지가 다가오면서 오후 5시반이면 저녁이라는 주홍빛 멜랑콜리가 등을 감싼다.

태양이 아침을 부르며 떠오르거나 하루를 마감하며 저물 때, 햇살의 황금빛과 어둑한 하늘의 짙은 파랑이 어우러지는 매직아워를 만난다. 낮과 밤의 중간에 하늘이 만들어낸 마법같은 시간은 바라보는 사람 모두에게 남부럽지 않은 순간을 선물한다. 하루 1시간쯤 될까 싶은 이 낭만은 흘러가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사람에게 공평하다.

전주 한옥마을에는 골목마다 오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1911년 말에 전주천변 근처 성곽이 철거되고, 일본인들이 상권 중심지로 진출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1930년 무렵부터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만들기 시작한 한옥마을은, 현재 한옥 605여채와 일반 건물 171개가 자리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화려해진 한낮의 한옥마을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담백한 떡갈비나 고기, 참치 등을 넣은 바게트 버거, 완자꼬치 등 먹거리가 발길을 붙잡고 형형색색 꽃같이 고운 한복과 70년대 교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어우러진 모습에도 눈이 간다. 노래 '고향의 봄' 가사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을 본다면 비슷한 기분이 들까.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을 모신 경기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이뤄지는 교동아트미술관, 구들방에서 하룻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한옥생활체험관, 전통한지원이나 술박물관 등 구석구석 누비며 체험하다보면 겨울하늘은 금새 어둑해진다. 추위를 피해 사람들이 하나둘 기와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니 인파에 가려져 있던 기왓장과 담벼락, 대들보, 등불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보이지 않던 걸 보이게 해주는 다른 의미의 매직 아워다.

한옥마을 전체를 감상하기 위해 오목대에 오른다. 오목대 바로 앞보다는 계단을 조금 내려온 위치의 뷰포인트에 서면 기와지붕들의 검은 물결 사이 진한 금빛으로 흐르는 가로등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성계가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길에 승전 잔치를 베풀고, 태조가 된 뒤에 지은 정자. 이성계가 본 오목대 위의 풍경은 지금과 달랐겠지만 그 승리의 환희와 야경을 바라보는 벅참은 비슷했을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태조로도 있어 이성계와 관련있는 장소들을 연결한 역사탐방 투어코스도 소개되고 있다.

은은한 밤기운을 타고 전동성당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이국적인 모양이지만 짙은 갈색의 벽에서 한옥과 비슷한 온도가 느껴지는 건, 성당이 100년 넘게 이 곳에 자리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전인 1914년 세워졌다. 터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와 '한국 최초 순교터' 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성당을 오른편으로 한옥마을을 나서면 풍남문을 지난다. 남부시장으로 이어지는 회전교차로의 가운데에서 상점들을 빙 두르고 서있다. 푸름에 가깝게 밝은 조명을 온 몸에 받아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빛난다. 전주읍성 4대 문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풍남문은 임진왜란 때 파괴된 뒤 1734년 영조의 명으로 개축됐다. 176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교차로를 따라 남부시장에 들어서면 금·토요일마다 서는 야시장에서 푸짐한 먹거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낮과 밤이 맞물려 머무는 애틋한 매직아워처럼 한옥마을의 저녁 너머엔 옛스러움과 현대의 즐거움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한 해를 하루에 빗대자면 자정에 가까운 오늘. 떠나려는 올해를 쓰다듬고 다가올 새해에 설레여 할 수 있는 마법같은 시간이 지금 곁에 와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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