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영 구세군 충청지방장관 |
찬바람이 대전역 광장을 덮었지만 빨간 냄비는 여전히 따뜻하다.
그리고 빨간 냄비는 성탄절 전야까지 전국에서 소문 없이 조용히 끓을 것이다. 그러면 빨간 재킷의 봉사자들은 서로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랑을 할 것이다. “내가 봉사하던 시간에 웬 할아버지가 만원짜리 배추잎을 넣었다.”, “난 어떤 젊은 엄마가 대 여섯 살 쯤 돼 보이는 사내 아이와 함께 돼지 저금통을 가지고 왔는데, 그걸 냄비 위에 올려놓았잖아. 그런데 얼마나 무거웠던지 그만 땅으로 뚝 떨어져서 되게 미안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몇 억, 몇 십억, 몇 백억…. 그게 얼마만큼이나 많은 돈인지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아주 쉽게 주고받았다는 얘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촛불도 밝혀졌었다. 이유는 하나라고 본다. 탐욕이다. 성서는 그것을 죄라고 말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분명히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바라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가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인간이 영과 육을 살찌우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소유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나누는 작업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구비되지 못할 때 심한 불편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불편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으로 몰아넣는 경우도 생긴다. 더 나아가서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불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을 나누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 세상은 세상에서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다. 또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받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사랑을 나눠주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탐욕만이 세상을 가난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 때문에,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오셨고, 그 사랑을 누구에게나 나눠 주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도록 가르치셨다. 성탄절의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다. 바로 예수가 가르쳐 주신 그 사랑을 나누는 작업이 멈추지 않을 때, 천사들의 노래처럼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를 노래하면서 이웃의 불편을 덜어주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부자일까?
손석영 구세군 충청지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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