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와 영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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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와 영적 전쟁

  • 승인 2016-12-20 11:10
  • 신문게재 2016-12-21 23면
  •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할리우드의 대중적인 히어로 무비에서도 우리는 지혜를 얻곤 한다. 마블의 신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사가 된 의사의 이야기인데 종교 우화의 관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주인공은 제 지식에 대한 확신이 강한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성격의 신경외과 전문의이며, 초반부터 시련을 겪고 순종적 믿음을 강요 당한다. 그가 의술 대신 배워야 할 마법은 어쩌면 믿음 그 자체다. 믿음을 통해야만 기적은 발현된다. 마법과 같은 환상의 능력이란 믿지 않고서는 도무지 익힐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동료들은 육신보다 정신력으로 강해진 성기사의 특징을 지닌다. 대부분 팔이 잘렸거나, 반신불수가 되었거나, 손의 신경과 근육이 산산조각나는 등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서야 마법을 만난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고 약해진 사람들이 교회나 절에 찾아가 위로를 받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도 많지 않은가. 그들은 영적 전사로 거듭난 만큼 신념을 위해서라면 엄청난 폭력적 결기로 남을 해한다. 종교 모임의 치유적 기능과 배타적 공격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설정이다.

영화의 배경적 세계관은 멀티버스에 근거한다.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인류를 위한 숭고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액션씬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한바탕 꿈이며 <매트릭스>이자 <인셉션>인지라 현실에 물리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영적, 마법적, 비가시적 세계 - 다시 말해 저 너머의 이계를 믿지 않는자들에겐 지각되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대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종교, 또는 온갖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상징들이 지니는 가치와 한계를 역시 동시에 드러낸다.

히어로물에도 진영논리가 있을까? 사실 히어로물만큼 편가르기가 중요한 장르도 없다. 싸움을 통해 서사를 추동하기 때문이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가. 영화 상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 이 영화가 지향하는 윤리적 주제의식일 것이다.

악당 '케실리우스'는 죽음을 모욕이라 한다.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꿈꾼다. 영생을 통한 구원이라니 -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왠지 영생교나 구원파가 연상된다. 이 영화를 영적 전쟁을 다루는 종교 우화로 읽으면 잘 맞아떨어진다고 해둔 핵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설적인 건 죽음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믿는 그 확신에 찬 얼굴마다 이미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사후대비용 불신지옥을 외치며 자신이 딛고 선 땅을 타락한 세상이라 비하해봤자, 죽음 이후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현실도피적 삶이란 현재의 삶에선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본인만 신께 간택되었다는 선민의식은 부질없다. 당신도 나처럼 세상 사람이다.

주인공의 스승이자 조력자인 '에인션트 원'은 인간의 수명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신비한 존재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존중한다. 그녀의 죽음은 인간적이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그녀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 추락사는 이 기상천외한 판타지 영화가 공들여 붙들어둔 리얼리즘이다. 중력에서 자유로운 목숨, 죽음을 초월한 몸이란 결코 실존할 수 없다.

어차피 세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음의 초월이란 축복이 아니며 인간다운 시간의 인식을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태도다. 유한하고 분절적인 시간의 구속을 무시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가 의미를 버리는 순간, 우린 사랑도 버려야 한다. 영생이 가능하다면 남녀가 자손을 낳을 필요도 없다. 시간의 덫은 사랑을 선물한다.

영화 주제는 스승의 대사와 연인이 시계에 새겨둔 문구에 집약되어 있다. “죽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은 사랑을 알게 한다”. 영생의 구원이나 천국의 환상에 집착하기보다 내게 주어진 죽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삶만이 무한히 확장되고 반복되는 무의미에서 의미를 건져올려 우리를 인간다움과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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