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윤희 신광초 교사 |
우리 반 서우에 대해 종합의견을 기록할 때이다. 행동이 느리고 산만해서 매 교과활동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장난이 심해 거의 매일 꾸중을 듣는 우리 서우. 단점은 쉽게 생각나는데 장점을 뭐라고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서우가 뭘 잘했더라? 언제 웃었더라? 뒤이어 꾸중들을 땐 언제인지 까맣게 잊고 나의 칭찬 한마디에 해맑게 웃던 서우의 얼굴이 살포시 떠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얼마 전에 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초등학생 딸을 외국의 국제학교에 보낸 엄마와 딸이 묵고 있던 홈스테이 주인과의 대화 장면. “뭘 물어볼지 한국 엄마들은 다 같이 모여서 상의하나 봐요. 질문이 죄다 똑같아요. 오늘 반찬은 뭔가요? 공부는 잘 하고 있나요? 어제는 몇 시간 공부했죠?” 자신을 탓하는 것 같아 머쓱해하는 아이 엄마에게 덧붙여 말한다. “그런데 소신 있는 부모는 그런 걸 묻지 않아요” “그럼 뭘 물어보죠?” “딸이 오늘은 어떤 일로 웃었나요? 키는 얼마나 자랐나요? 오늘 스스로 한 일은 무엇인가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아이의 엄마처럼 나 역시 머리를 띵 얻어맞은 듯 했다. 퇴근 후 초등학생인 큰 아이를 만나면 나 역시 “공부 잘 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하며 소신 없는 부모처럼 묻곤 했었는데…. '아차'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힘들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여러 개의 학원을 마치고 부모보다 더 늦게 귀가하는 아이들도 많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나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은 크기만 하다. 지난 국어시간, 학교에 건의하거나 선생님께 부탁하는 글쓰기를 할 때 우리 반 서우는 학교에서 일찍 끝내달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러면 자기도 친구들과 많이 놀 수 있다면서.
참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다운 부탁이었다. 어디 서우뿐이랴. 다른 아이들도 종례를 마치고 교실에서 나갈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얼굴들이다. 이 반대의 경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서, 어서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절로 웃으며 학교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우리 반은 하교 전에 10분 정도 '생각 나누기' 활동을 한다.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 간에 있었던 일을 주제로 매일 다섯 명 정도 돌아가며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내일부터는 이 시간에 우리 아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덧붙여야겠다.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일로 웃었니?”
엄윤희 신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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