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
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연평균 10%의 놀라운 고도성장 분위기를 타고 조선, 자동차산업육성계획 등 저마다 산업을 다변화하고 수출을 늘릴 새로운 계획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여기저기 분산된 연구소를 한데 모아 집중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당시 서울의 홍릉연구단지는 비좁아서 대전시 유성구 일대에 대덕연구단지(현 대덕특구)를 개발하게 되었다. 대덕특구는 이제 여의도 8배 면적에 17개의 정부출연연구소와 KAIST, 민간연구소 등 60여 개의 연구기관이 들어서고 2만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40여 년 전에 연구소를 한곳에 모아 시너지를 내라고 만든 대덕특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곳에 모아놨으나, 여전히 연구소 간에 벽이 존재하여 함께 연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문 간, 기술 간, 산업간 다양한 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소들과 경쟁하려면 적어도 대덕특구 안에 있는 출연연끼리만이라도 애초 취지대로 벽이 없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사정은 녹록지 않다. 다 함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출연연들이지만 엄연히 각기 독립된 법인들이니 저마다 건물과 시설, 대지를 소유하고, 그 소유의 경계에 예외 없이 울타리를 쳤다. 이 울타리는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융합의 시대에 연구원이 바로 이웃 연구소에 가려고 해도 별도의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벽이 되고 있다.
예부터 사람들의 생활터전은 하천을 따라 자리 잡았다. 하천은 상류와 하류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도로가 인간의 주 교역로로 자리 잡기 전부터 이동 통로로도 이용되었다. 요즈음 하천은 수변 환경이 개선되면서 현대 문명인의 찌든 삶을 치유하는 힐링 장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따라 천변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여름 밤 무더위를 피해 녹음이 우거진 둑길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하루를 마감하기도 하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 옆 벤치에서 사랑을 키워가기도 한다.
대덕특구 중심부에는 예전 숯골로 불린, 금병산에서 발원하여 4.9km를 흘러 갑천으로 유입되는 탄동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있는데, 이 천변에는 지난해 유성구에서 조성한 숲향기 길이라는 산책로가 있어서 벚꽃이 만개하는 4월과 낙엽이 뒹구는 가을 수많은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러나 휴식·편의시설이 절대 부족하며 산책로가 덜 정비된 구간이 많고 과학문화 행사·콘텐츠도 거의 없어 시민들이 연중 즐겨 찾는 힐링 공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반가운 소식은 요즈음 이 천변에 있는 기관들이 탄동천을 더욱 아름답게 정비하고 이웃 기관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작은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성구 및 탄동천 변에 있는 11개 기관이 이달 말 탄동천변을 과학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과학문화 길로 조성하기 위한 MOU를 맺기로 한 것이다.
모두 힘을 합쳐 자기 기관 앞 숲길과 수변을 정비하고 탄동천 생태환경을 복원시킨다면 예전처럼 물오리와 원앙, 해오라기가 다시 날아오게 될 것이다. 산책로에 야외벤치와 정자를 놓고 하수관로 확충과 둔치 인공습지 조성 등 수질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기존 벚꽃 구간과 조화되면서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피고 지는 나무(3·4월의 매화·살구, 5월의 이팝나무, 한여름의 백일홍 등)를 식목하면 어떨까?
산책로 인근 일부 건물과 휴게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계절별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한 과학문화축제가 상시 열린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연구원들이 깊이 사색하며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이웃 연구소의 커피숍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뛰쳐나오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연구소 간 소통을 막고 있는 울타리가 더는 의미 없는, 끊어졌던 소통의 통로가 하천을 따라 연결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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