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웃프다 대한민국이여!

▲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장ㆍ전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더라도 '웃픈' 경우가 적잖이 있기 마련이다. 마냥 슬퍼만 할 수는 없으면서, 그렇다고 즐거워서만 웃는 경우가 아닐 때 사용하는 말로 여겨진다.

한 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웃프다'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드라마 같은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게다가 이에 반응하는 언론들과 국민들의 모습은 '웃프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비슷비슷한 언론사들의 보도는 대한민국의 존립자체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국회의 국정조사는 그게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또한 조기대선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든 국민이든 분노할 때는 분노해야 한다. 다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며, 그 행위의 목적에 있어서는 분명한 목표점과 순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나라만 어수선해질 뿐,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는 아무 곳에도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순수한 국민 즉 대중에 의한 시위가 아니고, 정치집단에 의해 기획된 집회, 정권창출에 혈안이 돼 있는 야당 잠룡들의 치밀한 계산과 선동에 의한 집회라면, 어느 정당과 정부가 새로 들어서도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것을 주워담을 방법은 없다. 다만 더 이상 국민들이 흥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정부도 여·야도 집권에만 연연하는 분열과 갈등을 더 이상 조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고, 진보진영 정당들은 국가와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보다는 정치권이라는 큰 틀에서 이 국가사태가 최대한 그나마 조속히 합리적으로 수습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을 정말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가 말이다. 야당도 정부와 여당의 명명백백한 약점을 가지고, 자신들의 집권의 기회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가. 진심으로 국민과 함께 분노하고, 울고 웃는 것인가 말이다. 국민에게는 말 못해도 하늘과 본인들은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온갖 불법의 근원이라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함께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냥 막가자는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아니키즘(anarchism)이다. 엄연히 대한민국은 헌법을 명시하고 있는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닌가. 상대가 폭력을 행사하면 법과 절차를 통해 상대를 처벌하던지 용서하면 그만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국가와 국민 사이에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대개의 정답은 이미 각자의 심장에 있지 않은가.

우리 정치권도 국민도 어느 부분에서는 힘을 모아야 하지, 분열과 불신과 대립과 언행의 폭력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공존(共存)해야지 공멸(共滅)해서야 되겠는가. 적어도 작금의 사태 자체가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에게는 공멸할 수도 있는 상황 아니겠나. 시국 자체가 우리에게는 공동의 적이 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함께 울고 웃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적어도 웃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든 함께 울고 웃어야 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만 살 수는 없는 것이 공동운명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국가라고 부른다. 웃프다. 대한민국이여.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장ㆍ전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