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필덕 세종 온빛초 교사 |
또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들도 있다. 스케치북에 문구를 적어 시위 흉내를 내고 몇몇 아이들이 동조해 어울리기도 한다. 한번은 학교에서 보이는 아파트 현관에 내건 현수막을 보고 아이들이 왁자한 소란을 벌이기도 했다.
이럴 때 나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모양을 바라볼 뿐이다. 옆 반 선생님은 아이들이 시위를 흉내 낼 때 어른들의 일이니 동요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는 중이다.
내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공무원인 교사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기에 그렇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사의 시각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물론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남는다. 먼저 중립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치적 이슈에 대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간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사표명을 학생들 앞에서 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학생이 내게 “선생님은 탄핵에 찬성하세요, 반대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는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생각이 있지만 밝히지 않겠다고 해야 하나? 이도 저도 아니면 올바른 판단과 정치적 안목을 키워줄 수 있도록 거시적인 관점에서 교육적 지도를 해야 할까?
그런데 한편으로 아이들의 놀이에 내가 너무 교육적인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아이들은 이것이 그저 놀이일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5학년 때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다. 오랜만에 열리는 직선제 선거였던 터라 사회적 관심이 아주 높았다. 나는 학교나 역에서 벌어지는 유세에 그 구름 같은 관중과 아우성이 재미있어 지지하는 후보를 정해 유세 놀이를 하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이 지지하는 대로 노태우 후보를 지지하면서 놀았다.
내가 지지하는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진정 바랐었다. 그런데 옆에 친구 녀석이 충청도면 김종필 후보를 뽑아야 대전이 발전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바로 노태우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만난 5학년 학생들은 시간이 지난 2016년 혼란을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기억하는 1987년처럼, 혹은 내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구한말처럼, 놀이로 혹은 노래로 기억하지 않을까?
동시에 나는 너무도 선생답게 정치적 중립을, 교육적 지도를 떠올리며 조급해하는 건 아닐까 돌아본다.
장필덕 세종 온빛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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