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석 천주교 대전교구청 신부 |
그 영화에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권모술수가 난무했다. 주인공은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다. 하루만 보지 않아도 내용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내용이 계속 등장하였다. 이 삼류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관객이자,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웃픈 영화는 지금도 계속 상영 중이다.
내가 어렴풋이 알던 대통령,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최고로 성공한 분들이다.
그들은 가정과 학교에서는 물론,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기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문제는 그런 치열한 경쟁력을 뚫고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아쉽게도 성숙과 멀어져 있다. 독일의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런 정곡을 찔러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동안에 진짜 삶은 중단 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얼마 전 수도권 중학생들에게 한 인성지수 조사결과를 보았는데, 약 3분의 1이 친구나 부모를 계속 속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TV에 나오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거짓말을 잘 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정직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직에 대한 점수는 낙제점인데, 반면 정의에 대한 점수는 아주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인성을 이루는 세 가지(도덕성·사회성·정서) 요소 중 정직은 자신에 대한 잣대이고 정의는 타인에 대한 잣대인데, 자기는 정직하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기적 동기에서 나오는 결과였다.
우리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세하고 성공하는 데에 나와 우리 가족만 있지, 이웃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정치의 목적은 단지 정권획득으로, 국민의 행복과 공동선이 빠져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 효도하려는 경제의 목적에도 이웃의 행복과 공동선이 빠져 있었다. 이렇게 성공한 이들은 이웃을 이용하여 밟고 올라선 지배자에 불과하기에, 성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나라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근한 예로, 우리 지역에도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 시설이 있는데, 학교와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니 나가달라고 한다. 교육이 학생들을 이기적인 괴물로 만들고 있는 잔인한 예이다. 점수나 이득을 따져 이루는 성공이 중요하지,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사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상징적인 일이지만, 지난 11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미사에 노숙인들을 귀빈석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지구와 아름다운 모든 것들, 심지어 이 대성당도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을 하느님과 이웃을 우리 삶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살면서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전쟁보다도, 내부적인 붕괴와 몰락이다. 국가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보다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윤리적 기반, 그리고 건전한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최소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날마다 보게 된다. 나만 성공하고 출세하려는 욕심 때문에 자기도 불행해지고 이웃도 불행해지는 삼류영화 속에 들어가 살고 있다. 현명한 국민 때문에 해피엔딩이 되리라 믿지만, 정말 슬프다. 정말이지 그냥 영화였으면 좋겠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이 현실들이.
한광석 천주교 대전교구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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