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하는 소리가 끝나고 한참 시간이 지나 10시쯤 되었을까?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이웃집 할머니께서 떡이며 과일 몇 개를 들고 오셨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굿상에 올린 것은 아니니 맛보라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차나 한 잔 하자고 집안으로 모셨다.
아들 둘이 자살을 하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손녀 둘을 시집 못 간 딸과 맡아 키우고 있다 하시며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어떻게 하든 풀어보고자 1년에 몇 번씩 굿판을 벌리시곤 하신단다. 살아오신 과거가 험난했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며 할머니는 이웃들에게 미안해 어쩌냐고 오히려 이웃 걱정을 하고 계셨다.
도대체 이렇게 선량한 할머니가 전생에 어떤 업보가 있기에 아들 둘을 앞세우고 혼자 남은 아들은 이혼까지 하며 딸은 결혼도 못하고 친정에서 늙어만 가게 되었는지?
할머니께서 무당에게 전해 들었다는 말에 의하면 조상귀신이 씌워 무슨 일이든지 안 된다는 것이다. 조상신이라면 그 자손들이 잘 되기를 도와주고 자손들이 잘 되도록 음덕(陰德)을 베풀어 줘야 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론 이런 무속신앙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든 종교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세계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 깃들여 있지만 무속 신앙은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상신이라면 자손이 잘 돌봐줘야 할 터인데 자기 자손들에게 씌워 괴롭힌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힘든 고통이 따르게 되면 뭔가 의지할 곳을 찾게 된다. 따라서 무속인을 찾아 굿을 하게 되거나 종교에 몰입하며 매달리게 된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려는 무속인들과 가짜 성직자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만 믿고 따르면 무슨 일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며 본래의 교리(敎理)에서 벗어난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종교가 가져야 할 사랑과 포용, 관용, 올바름에 대한 가치들이 사라지고 위대한 신들의 말씀이 이런 이들에 의해 왜곡되어 버린다.
그러나 간절한 이들은 아닌 줄 알면서도 그 꼬임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해 가며 굿을 하기도 하고, 사리사욕에 찬 일부 교단(敎壇)에 과도한 헌금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한다. 자신의 불행한 인생에서 벗어나고파 굿을 끊지 못하는 이웃집 할머니처럼.
석가모니는 물론 예수도 탄생하기 전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된 <논어>에 의하면 그 당시 공자께서는 천신(天神)을 인정하면서도 귀신의 존재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때 제자 자공이 신을 섬기는 법을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산 사람을 섬기는 방법도 모르는데 어찌 신을 모시는 방법을 묻느냐?”공자는 인간사의 이치를 제대로 헤아려야만 비로소 신의 존재나 가치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 신의 노예도, 귀신의 노예도, 재물의 노예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의 행복은 사람과 사람들 간의 조화, 사람과 자연의 조화, 사람과 사회의 조화 그리고 심신의 조화에서 얻을 수 있음을 설파했다. 그러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행동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 옳다고 가르쳤으며 신도 그런 사람을 굽어 살핀다고 하셨다.
서양의 격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도리에 맞게 잘 살아가면 신은 그런 이를 알아서 살피신다는 말과 상통하다고 할 수 있다. 신을 제대로 섬기는 일은 내가 삶을 올바르게 잘 살아가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무속신앙을 맹목적인 신앙이기보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로 보면 어떨까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무속신앙을 한국문화의 원형질이라고 보고 있으며 기원 전 고대 사회에서 비롯되어 주변종교로 전락하면서도, 실제 우리민족의 심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고, 동해안 지방에서는 단오굿, 별신굿, 씻김굿 등을 통하여 벌써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초인종을 누르실 때의 얼굴 표정보다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에 가끔 말벗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쌓였던 답답함이 풀려 굿에 집착하시는 마음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할머니,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라고 말씀드리자 뒤돌아보는 할머니 얼굴엔 작은 웃음꽃이 피어났다.
김소영(태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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