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오디세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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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오디세이] 왜?

  • 승인 2016-12-05 11:07
  • 신문게재 2016-12-06 22면
  •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밤사이 내린 눈으로 출근길 승용차위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언 손을 불어가며 열심히 눈을 걷어내고 자동차 키를 누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애써 눈을 치운 자동차 바로 앞에 있는 차에서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이상하여 다시 키를 누른다. 애써 눈을 걷어낸 차가 아닌 앞차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다. 지금껏 남의 차를 붙잡고 씨름한 것이다. '헛수고'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광고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매사에 원하는 이상으로 성공, 성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이든 조직이든 국가마저도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있되, 상대적으로 '왜'에 대한 명확하고 명료한 설정이나 동의 없이 일하고 있다. '왜'에 대한 설정의 경우마저 '무엇을', '어떻게'를 설명하기 위한 구호성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그저 열심을 촉구하고 다그치기에 급급하다. 결국,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원칙 없는 행동규범의 원인이 되어 곳곳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래서 헛수고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연구실에서 한 대학원생이 열심히 논문을 읽고 있기에, 그걸 왜 읽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원생의 퉁명스런 대답, 교수님이 읽으라고 해서 읽는 거란다. 대학원생마저 목적 없는 읽기, 하라기에 하고 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

모 대기업에서 있었던 일화다. 임원회의에서, 직원들이 편한 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자는 건의가 있었다. 외부 손님들을 매일 접해야 하는 기업 성격상 복장이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겠다 싶어 물어본 제안 이유가 놀랍다. 요즘 그렇게 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대답이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던져진 건의였다. 오늘도 그 임원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엄청나게 유연성을 보이는 기업 운영을 한다. 컴퓨터로 시작한 기업이 MP3, 휴대전화, DVD플레이어를 만들어도 고객들은 자청해서 애플의 상품구매를 해댄다. 소비자들이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느 분야의 제품을 만들든지, 그 모든 것이 애플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실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라 한다. 기업 존재 이유, '왜'를 명확히 하고 있음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왜'를 잊거나 간과하고 산다. 매사를 '왜'해야 하는지가 선결되어야 함에도 '무엇'과 '어떻게'만 강조하거나 매몰된다. 기업을 왜 하는지, 학생 교육을 왜 시켜야 하는지, 정치는 왜 하는지, 국가는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왜 또는 목적)를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왜'는 신념이다. '어떻게'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며,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무엇을'이라 한다. 그래서 탁월한 리더나 기업은 분야에 관계없이 '왜'부터 생각하고 나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에 집중해서 행동하고 소통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일에 있어 명료한 '왜'는 의사결정에 있어 명쾌한 필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왜'가 명료할 때 그 '왜'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가 일치하면서 확실한 핵심가치를 지닐 수 있게도 된다. 탁월한 리더들의 경우, '왜'에 기반한 핵심가치로 인해 흔들림 없는 일관된 규범과 원칙에 따라 행동함으로 구성원으로부터는 변함없는 신뢰를 얻게 된다.

'왜'는 리더십의 핵심이다.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리더십이라면, 명료한 '왜'를 갖추어야만 구성원을 고무시킬 수가 있다. 남을 움직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만들거나(조종)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영감)이다. 억지로 끌어가는 것과,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에는, 과정은 물론 결과에서도 그 차이가 크다. 또한, 리더가 가진 '왜'의 명료함에서 카리스마와 자신감도 나오게 된다.

'왜'는 목적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삶의 목표가, 돈 많은 사장이나 스포츠카인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나 좋은 차는 공부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고 방법이다. 타인의 행복추구에 공헌하고자 하는 목적(왜)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이지, 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하는 공부가 아니게 된다.

'왜'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 수단에 집착할 때 제대로 된 문제해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도 어렵다. 작금의 교육계 현실이 그렇고, 혼란한 시국의 발단이 그래서고,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정치인들끼리 충돌만 하고 있는 이유도, '왜'보다 '무엇을', '어떻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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