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옥 (사)한자녀 더 갖기 운동연합 중앙회장 |
1945년,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당돌하고 야무지며 때로는 버릇없어 보이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발표했고 세계의 어린이들은 그 아이, 삐삐에 열광했다. 아마 지금 삐삐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을 3, 40대 가운데도 삐삐의 팬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해 5월, 국회 저출산 대책 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함께 출산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스웨덴에서는 '삐삐 탄생 70주년'을 맞아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거리를 수놓은 삐삐 캐릭터와 그에 열광하는 시민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은 아동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70년 전의 삐삐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학교를 찾아간 삐삐는 미술시간에 교실 벽에 크게 말을 그리고는 깜짝 놀라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이 큰 말을 도화지에 그려요?” 라고 되묻는다. 아이들의 큰 꿈을 작은 틀에 가두지 말라는 의미가 그 안에 있다. 어른 남자보다 더 힘이 센 삐삐는 입술과 손톱에 빨간 페인트를 바르면서 “시장에 갈 때는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요”라고 말하며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조롱한다. 아동의 인권과 양성평등의 의미를 담은 동화, “삐삐 롱스타킹”은 스웨덴의 자랑이다. 동화 한편에서도 느껴지는 스웨덴의 힘, 과연 복지국가답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 스웨덴 복지제도의 바탕에는 강력한 양성평등정책이 있다. 여성과 남성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기회, 권리, 의무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웨덴 양성평등정책의 목적이다.
현재 스웨덴은 24명의 장관 중 12명이 여성이며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48%에 이른다. 이는 여성이기에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여성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양성평등한 사회,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해 스웨덴은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통해 여성의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여성이 출산 예정 60일전부터 480일 간 출산 휴가를 쓸 수 있고 쌍둥이를 낳으면 여기에 180일의 휴가가 더 추가된다. 이 기간 동안 월평균소득의 80%를 지급받게 된다.
그 결과 스웨덴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한 것은 물론 매년 4%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 11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래 처음으로 국장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이 5%를 돌파했다. 전체 고위공무원 1514명 중 고작 여성은 84명뿐이라니. 부끄러운 통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4.6%(2015년 기준)에 달하지만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취업 후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되었다가 다시 비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정부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각종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워킹 맘의 현실 등은 제도와는 별개로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 시대의 모든 엄마들은 내 아이가 삐삐처럼 자라나길 원한다. 강하고 용감하고 도전적이며 양성평등의 개념을 가진 아이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가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존중하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세상.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복지국가의 모델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닐까.
박윤옥 (사)한자녀 더 갖기 운동연합 중앙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