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 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눈물겹도록 가난했던 피난시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증기 기관차에 사용할 석탄을 훔쳐서 팔아먹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불과 60여 년 전의 일이다.
경상도로, 전라도로 또는 서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 대전역, 그 대전역에 가면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20원짜리 가락우동이 있었고, 그 가락우동은 여행객들의 배를 채워주는 유일한 먹거리였다.
호남선을 달리는 특급열차는 풍년호,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타야할 열차는 완행열차다. 사람들은 대전발 0시50분 완행열차를 타야 고향인 전라도로 갈 수 있고 논산 훈련소도 갈 수 있었다. 기다렸던 막차가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면 열차 손님들은 앞을 다투어 뛰어내려 가락우동을 훌훌 들이마시곤 열차에 올라탄다. 2분이면 충분했다. 이런 사정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차의 지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지친 몸을 이끌고 대전역에 도착한 열차는 연료를 보충하고 급수를 하느라 5분간을 정차해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전역의 가락우동은 6,70년대 조국 근대화에 밀려 사라졌지만 민중들의 그리움은 대전역의 플랫폼을 통해 서정적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추억인 것이다, 추억이되 가슴은 아프나 아련히 그리운 추억인 것이다.
서울로 돈벌이 떠나는 호남사람들과 경상도 사람들, 아니면 월급 타가지고 고향부모님께 가는 젊은이들이나 머리 박박 깍고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지금은 늙어버린 젊은이들의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인 것이다. 그 추억을 살리기 위해 대전 중구청장(박용갑)은 대전의 대표음식을 칼국수로 정하고 해마다 칼국수 축제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산내 플라타너스(버즘나무) 가로수 길. 우리의 애환이 담긴 옛 플라타너스 추억의 길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나무껍질에 버즘핀 것처럼 생겼다 하여 우리식으로 붙여진 이 버즘나무. 원래 우리나라에 없는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 들여와 가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엽교목(落葉喬木)으로 자릴 잡은 나무다.
그런데 대전 동구 하소동에 산업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도로 정비를 하면서 이참에 이 추억이 얽힌 가로수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산내 플라타너스 길이야 말로 대전 시민 대부분이 기억하고 향유하는 곳이다. 청주가는 국도선 플라타너스 길보다 아니, 전국 최장의 플라타너스 길이기도 하며 나아가 나라 전체의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산내 플라타너스 길인 것이다.
옥천이나 금산도 이 길을 통해 갈 수 있고, 만인산 휴양림이나 상소동 오토캠핑장 등과 연계되어 있어, 아름다움과 특별함이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써 그 가치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경자원인 것이다.
제거 이유를 농민들이 농사 피해를 들었다 한다. 그러나 일이년 있어 온 것도 아니고, 산업단지 측과 더불어 논의 되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지극히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보라 산내 플라타너스 길을.
실제 농지에 접한 면적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론 농사에 피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타너스 길을 걸으며 정신적 위안과 휴식을 취하는 대전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나 보았는가? 더구나 플라타너스는 교목(喬木)이기에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는 능력이 어떤 나무보다 뛰어난 것이다. 넓은 잎이 겹겹이 자라 소음을 흡수함으로써 소음 방지에도 탁월한 역할을 한다. 한 여름엔 뜨거운 열기를 식혀 준다. 말하자면 방음, 방열 역할도 하는 것이다.
플나타너스 그늘로 인해 피해를 보는 농민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고, 아니면 그곳을 국비로 매입해서 대전 시민들에게 추억의 공간으로 제공해주는 것도 목민관들이 생각해야 되는 문제들이다.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가끔은 옛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찍었던 사진을 보고, 옛 친구를 만나 정을 나눌 수도 있고,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올 때 가까운 친구들과 걸어보고 싶은 곳.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추억 어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 산내 플라타너스 길.
베어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나 그리운 추억이 되살아날 때 어찌하라는 말인가?
김용복 /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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