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arte, 2016 刊 |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몽고메리의 소설보다 TV 속 만화로 상영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억이 더 큽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로 시작하는 이 노래 역시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OST입니다. 제 나이가 밝혀지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전 빨강머리 앤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워낙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본 탓에 저의 친정엔 아직도 빨강머리 앤 5권 세트의 소설이 서가 한 편에 꽂혀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강머리 앤의 유년시절은 물론이고 길버트 그레이프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그녀의 일대기적인 내용이 모두 담겨있는 소설이죠. 이번에 추천하는 에세이와는 별개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재미있게 본 당신이라면 소설도 추천합니다.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던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신간도서를 정리하던 중 바로 눈에 띄던 그 책, 나와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녀의 이름을 책 표지에서 다시 보게 된 거였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손이 가더군요. 내가 왜 그토록 그녀에게 빠져있었던 거였을까? 그 이유를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했던 말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을 따뜻하게 하더군요, 빨강머리 앤은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희망바이러스 제조자이거든요.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이 문구가 아닐까요?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일까? 마음먹은 일이 실패하거나 혹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 지금, 나는 지금도 빨강머리 앤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빨강머리 앤의 사람, 행복, 삶을 바라보는 시점과 백영옥 작가의 감성이 너무 잘 버무려졌거든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고 맛있는 카페에서 누리는 브런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빨강머리 앤과 그녀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물론 에세이이기 때문에 작가의 일부 에피소드에 대한 공감은 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보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오롯이 빨강머리 앤의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에 대한 행복을 같이 느꼈기 때문이죠.
“아!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이런 날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이런 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해. 물론 그 사람들에게도 좋은 날이 닥쳐오긴 하겠지만, 그렇지만 오늘이라는 이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까 말이야.”, “전요.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너무 예쁜 말 아닌가요? 이런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래전 그 날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게 해주는 책, 복잡하고 답답한 요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책,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바로 그런 책입니다.
민트색 표지도 예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말들도 너무 예쁘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어른으로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이잖아요. 그런 우리들을 위해,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들을 위해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뜻한 이불이 되어 상처받은 마음을 덮어줍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그리고 작은 일상에서 기쁨을 찾는 방법을 찾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이재은·대전학생교육문화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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