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최순실 게이트’와 ‘밥상머리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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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최순실 게이트’와 ‘밥상머리 민심’

  • 승인 2016-11-29 17:06
  • 신문게재 2016-11-29 3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허허, 이거 참….”

저녁을 드시던 아버지께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대면조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온 뒤였죠. 젓가락으로 두부조림을 집으려는 순간 다른 소식이 들려옵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에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국정 업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뉴스였죠.

어머니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능한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네요.” 아버지께서 한마디 거드십니다.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보고 ‘자기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아나봐’라고도 했다잖어.”

저도 제가 아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소식을 쏟아냈죠. 평소 10분이면 끝나는 저녁 식사가 30분이 지나서야 마무리됐습니다.

방으로 돌아오니 생각에 잠겼죠. 제가 경험한 저희 집 밥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밥 먹으면서 부모님과 정치 얘기를 다하네?’

저희 집은 TV든 라디오든 뉴스를 틀어놓고 식사를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듣곤 다들 한마디씩 하죠. 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부터 언쟁이 시작되곤 합니다.

“정부가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야당은 이유 없이 반대만 한다.” 아버지 말씀에 동의하기 힘든 아들놈이 바로 맞받아칩니다.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야당이 반대를 하죠.”

부자간에 이견이 크다보니 불똥이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튑니다. 부자가 ‘내말이 맞다’며 모녀를 설득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모녀는 이야기를 들어주다 지쳐 “그만하라”고 한마디 내지릅니다. 밥맛은 떨어지고 기분은 상하고, 가족 모두에게 밥상이 편할리 없었을 겁니다.

가족과 좋은 이야기만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의도치 않은 침묵으로 이어졌죠. 어느새 저희 집 밥상에는 뉴스 소리만이 들려왔고 식사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변화가 시작됐죠. 자연스레 말수가 늘어났고 대화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사실과 의혹을 구분해 말하고 경청하려한 자세 덕분일수도 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졌다는데 함께 분노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순실 사태 초창기 아버지께선 “그럴 일이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니냐”며 분노하시죠. 생각이 180도 바뀌신 겁니다.

솔직히 아버지께선 흔히 말하는 ‘보수’ 성향이시지만 최순실 사태로 정치성향이 바뀌셨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변화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낀 자괴감과 분노에서 출발했겠죠.

다른 집 밥상도 변화가 시작됐을 겁니다. 세대나 지역, 정치성향을 떠나 “이게 나라냐”는 탄식과 자조, 분노가 밥상머리 민심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했죠. 그러나 지난 26일 첫눈에 비까지 내렸지만 200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자괴감을 느낀다는 대통령과 손익계산에 바쁜 정치권에 서애 유성룡 선생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 “민심이 떨어지고 흩어지면 국가는 위태롭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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