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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미사에서 하신 신부님 강론에서 느낀 것이 있어 소개해 본다.
어떤 이가 마라톤 선수에게 마라톤 경기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무엇이었나요?
물은 이가 예상한 건 심호흡 또는 심한 갈증, 아님 목표점까지 달려 가야하는 영육적 고달픔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마라톤 선수의 대답은 신발 속의 작은 모래 알갱이 때문에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다 했단다.
그렇다 우리의 삶의 일종의 마라톤 경기일 것이고 별 것 아닐 수 있는 수많은 작은 알갱이 같은 끊임없는 고통 때문에 영육간 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고통을 각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를 극복해 내느냐 그 여부에 따라서 행불행을 스스로 떠 안고 살아간다는 거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십자가를 지니고 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무겁게 여기느냐 가볍게 여기느냐의 삶의 태도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가름된다 할 수 있다.
에피소드다. 두부류의 사람들이 하느님께 따져 물었다. 어찌하여 저희에겐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도록 하는 불행을 주시고, 다른 이들은 가벼운 십자가를 주셨느냐고. 하느님이 요단강을 건너온 이들의 십자가 무게를 개개로 달아보라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 무게는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결코 차별없이 똑같은 무게의 십자가를 주셨는데 각자 지닌 자들의 맘에 따라서 그 무게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고통의 산물인 동시에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희열과 소망, 행복과 부활을 얻는 기쁨의 선물이기에 기왕이면 등에 메고 사는 것 보다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더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의 지혜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 필자의 졸시拙詩를 소개하며 마무리에 이르도록 하려한다.
~처럼 살고 싶다
살고싶다/ 아닌/ 견공犬公처럼/ 개狗처럼//
살고싶다/ 아닌/ 덩굴처럼/ 나무처럼//
살고싶다/ 아닌// 으쓱대는 장대처럼/ 밑바닥 미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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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그렇게/ 주의 기도처럼//
김선호의 시집 <연정 하모니>에서
필자의 주위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들이 많다. 지난 19일 서울. 늦은 오후에 가진 ‘시집 출판 기념회’에도 소리소문없이 많은 분들이 와서 축하해 주셨다. 사실 하루를 필자에게 바친 격이니 얼마나 송구한가. 오늘만 해도 그렇다. 성당 교우 장모님이 부산에서 어젯밤 별세했다는데 신심모임을 마치고 소식들은 교우들이 그 먼 부산엘 서로 가겠다고 나선다. 얼마나 아름다운 심성이고 모습들인가.
난 유명세 타며 거드름이나 피우는 하고 많은 꼬락서니들 보다 비록 누가 보아 주지 않는 고통 주지않는 보석같은 작은 알갱이들 속에 필자가 숨쉬며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바라기는 부산 장례식장으로 몰려간 우리 아름다운 교우들이 부디 일 잘 치루고 밤 늦게 돌아와 소주로 간단히 피곤 물리치고 꿈나라의 누리에서 또 내일을 활기차게 여는 거다.
김선호 전 한밭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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