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천 변호사 |
유씨는 결국 아들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리한 법정 공방을 거쳐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말 '아들은 증여받은 재산을 유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유씨가 승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효도계약서'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효도계약서는 부모가 재산을 자식에게 증여하는 대신에 원하는 부양의무를 구체적으로 적은 계약서로, 자식이 약속한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부모는 재산을 찾아갈 수 있다.
이 판결이 나오기 이전, 구두로만 부모를 부양하는 조건으로 자식에게 재산을 넘겼지만 자식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부모가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경우, 법원은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자식의 손을 들어주곤 했는데, 이 판결로 '효도계약서'라는 법적 장치가 있는 경우에 재산 환수가 가능해진 것이다.
한편, 효도계약서를 작성할 경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구체적, 세부적으로 기재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잘하지 않으면 재산을 반환한다'고 기재할 경우, 부모에게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할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문구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효도계약서에 기재할 사항을 보면, 우선 증여하는 재산의 목록과 금액을 상세히 적어야 한다. '내 부동산을 준다','내 현금을 준다'라고 기재하는 것이 아니고, '대전 서구 둔산동 크로바 아파트 ○동 ○호(평가액 ○억원)', '하나은행 ○지점 계좌번호 금 ○원'등으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부양의 조건을 기재하는데, 예를 들면, '1달에 1번 이상 부모님의 집을 방문한다', '생활비로 매월 200만원을 부모에게 지급한다', '치료비는 자식이 전액 지급한다'는 식이며, 아울러 증여받은 사람이 계약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를 취소한다는 조항도 반드시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효도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녀로부터 증여 재산을 나중에 무조건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은 이후 재산을 바로 처분하거나 탕진할 우려가 충분히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증여 부동산에 대해 가등기를 하거나 처분금지 가처분을 미리 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효도계약서가 있어도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소송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 게 일반적인 현실이다. 앞서 유모씨의 사례를 보더라도, 10여 년 동안의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겨우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었고, 소송까지 갈 경우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거의 끊어진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효 관념이 희미해지면서 부모,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까지 써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기는커녕 학대하고, 재산을 증여받자마자 갑자기 돌변하는 자식들이 아직 상당하기에, 효도계약서는 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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