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우난순 기자 |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님의 상황이 이런 거겠죠.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당신이 느끼는 이 처참한 감정은 처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의 총탄에 돌아가시고 79년 심복 김재규한테 아버지마저 잃었으니까요. 당신은 자서전에서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비위 맞추고 아부하던 사람들이 외면하고 만나는 것조차 꺼렸다고요. 그때 느낀 배신감과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했지요. 그게 세상사 인심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품만큼 따스하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없죠. 저도 어릴 적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부터 찾았으니까요. 낮에 졸려 잘 때도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 바싹 붙어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자곤 했죠.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가 비명횡사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음을 충분히 짐작합니다. 구중궁궐에서 이 나라 절대권력자인 아버지의 보호아래 공주처럼 살던 분이었으니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존했겠지만…
거기다 아버지마저 그렇게 되자 당신의 불안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을 겁니다. 믿었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그 빈틈을 이용해 최태민 부녀가 비집고 들어와 당신을 현혹했습니다. 아마 그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그렇지만 당신은 어느정도 분별력이 있으면 지금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동생인 근령, 지만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까지 올리며 ‘최태민을 엄벌하고 언니를 구출해 달라’고 까지 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 바통을 이어받아 당신을 꼭두각시, 아바타로 만들어 국정을 농단했으니 누가 당신 편을 들어주겠습니까. 당신은 최순실과의 관계가 ‘순수한 마음’으로 ‘신의’를 지킨 결과라고 하시지만, 톡 까놓고 말해서 최순실한테 농락당한 것밖에 안됩니다.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을 저지른 무당 진령군이나 제정 러시아 말기 황제 니콜라이 2세 밑에서 전횡을 일삼은 라스푸틴과 다를 게 뭐 있나요.
이제와서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무 소용 없지만 당신은 정치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냥 ‘비운의 공주’로 연민과 동정을 받으며 조용히 살았더라면 그레타 가르보처럼 신비의 대상으로 남았을 지 모릅니다. 사악한 인간들에 떠밀려 정치에 발을 들여놨어도 어쨌든 선택은 당신이 했으니까 남 탓 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뽑은 국민들 잘못도 큽니다. 목욕탕에 가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 얘기를 듣게 되는데요. 그분들은 “우리 불쌍한 박근혜 대통령을 야당 놈들이 왜그렇게 괴롭히는 겨”, “국민들 잘살게 하려고 얼마나 애 쓰는데…”라며 당신에 대한 무한 사랑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민낯이 까발려진 지금, 국민들의 배신감이 더 큰 겁니다. 당신이 대통령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걸 국민들은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남편, 자식이 없으니까 적어도 가족들의 비리는 없겠다 싶었던 게지요.
미련 버리고 내려오는 게 최소한의 살 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하는 걸 볼 때마다 전 참 부러웠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거침없는 달변으로 자신의 의견을 좔좔 풀어내는 걸 보며 우리 대통령은 왜 늘 종이에 쓰여진 것만 읽고 바로 내려오는 걸까, 안타까웠습니다. 최순실이 그렇게 시켰나요? 아니면 당신의 부족한 능력을 들킬까봐서요?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국민을 분노케 한 당신을 보면서 진정한 의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있습니다. 소나무, 잣나무 몇 그루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는 황량한 그림 말입니다. ‘세한도’의 탄생 배경은 가슴 뭉클합니다.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간 추사는 절친한 친구와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은 물론, 평소 교분이 있던 사람들도 자신을 멀리해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그런데 역관(지금의 통역관)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대했습니다. 추사는 감동을 받아 걸작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최순실의 의리와 이상적의 의리가 같을까요?
‘고립무원’. 박근혜 대통령님! 당신은 지금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 여기서 진정으로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을 극복하고 독립된 자아로 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으로서 ‘무능하고 자질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수치 아닙니까. 더 이상 허약한 정신으로 누구의 아바타로 살지 마십시오. 더 이상 그 자리에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이 최소한 당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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