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평 이순신연구가 |
“백성은 먹을 것에 기대고, 나라는 백성에게 기댄다. 백성이 굶주리면 백성이 없는 것과 같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과 같다.” 선조 때 율곡 이이 선생의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은 성종과 명종 시대를 거치면서 쇠퇴기에 들어섰다. 왕은 무능했고, 리더들은 기득권에 갇혀 밥그릇 싸움에 바빴다. 백성들은 온갖 세금에 뼈가 빠졌다. 기득권층은 알면서 외면했다. 공익과 국익을 고민하는 조식과 이이 같은 사람들은 절규했다.
외침의 위협도 현재형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눈을 감았고, 귀를 막았다. 서구인이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횡단할 때에도 오직 명나라만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았다.
이이가 사망한 뒤 10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7년 동안의 길고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총과 칼에 의해 죽임 당했고, 굶어죽고 전염병으로 병들어 죽었다. 몇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본에 끌려갔고, 심지어는 서양인의 노예로 팔려 머나먼 이국의 땅까지 가게 되었다.
그 엄혹한 때, 세자 광해군은 임금 선조를 대신해 곳곳을 다니며 전쟁 극복에 앞장섰다. 전염병에 신음하는 백성들처럼 자신도 전염병에 걸린 상태에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분주했다. 백성들은 그에게 기댔고 환호했다. 그 역시 그 때는 백성의 바람을 따랐다.
그런 광해군이 임금이 된 뒤에 완전히 변했다. 총명했던 세자, 전란을 아버지 선조 대신 온몸으로 막아냈던 세자, 백성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았던 세자가 변했다. 권력에 취했다. 사람의 장막에 갇혔다. 들으려 하지도 듣지도 않았다. 스스로 만든 권력의 감옥에서 독선과 아부소리에 갇혔다. 전쟁터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백성들의 한 맺힌 비명을 잊었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것,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을 살리는 것 보다 따뜻한 잠자리, 그를 둘러싼 기득권층의 편안한 업무 공간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기득권 세력은 전쟁 때 백성들을 동원하기 주었던 달콤한 사탕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빼앗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바빴다. 역사의 시계가 완전히 거꾸로 돌았다.
전쟁은 궁궐을 불태웠고, '무능한 권위'와 '무책임한 권력자들'을 불태웠다. 무엇이 불탔는지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흡혈귀처럼 백성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빨대를 꽂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들고 일어났다. 오늘날의 말투로 바꿔 말하면 이렇다. “지금 백성들이 임금님을 전처럼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지금 어느 백성 하나가 당신을 지지합니까? 하늘이 내려준다는 임금의 자리가 지금도 당신의 자리입니까?” 또 말했다. “당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지금 누가 다스리고 있습니까? 하늘이, 땅이, 아니면 귀신이 당신 대신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는 계속 말했다. “당신은 당신을 가둔 문지기, 사이비 종교인, 사익만 노리는 장사치, 언젠가는 배신할 아부꾼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습니다.”
조식과 이이, 곽재우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역사가 무섭다. 권력에 취한 사람들이 무섭다. 권력만 노리는 사람들이 무섭다. 개와 말이 되려는 사람들이 무섭다. 남 탓 만 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누가 잔다르크를 만들었고, 누가 잔다르크를 화형시켰나. 진정한 개혁과 변화는 나부터 시작한다. 불의에 눈을 감은 나, 부정과 타협한 내가 잔다르크를 만들었고 화형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민심이 불탄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망각증과 온갖 이기심을 먼저 불태우지 않는다면, 사탕을 분명히 다시 빼앗긴다. 분노의 광장에 서는 날을 또 맞는다.
박종평 이순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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