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
강남의 중심축인 말죽거리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을 오갈 때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던 도성의 변방이었으나, 1969년 제3 한강교 건설에 이어 강북의 명문고, 대법원, 검찰청,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이전과 온갖 특혜가 퍼부어진 결과 완벽한 현대도시로 탈바꿈되었다. 강남의 성공이 너무 극적이어서일까?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 지방의 중소도시들까지도 시청, 법원, 방송국, 명문고 등을 옮겨 새로운 도심을 만드는 강남스타일 개발이 추진되어 원도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쇠약해지고 시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강남의 명소 가로숫길이 지고, 이태원의 경리단길, 서촌, 연남동 연트럴파크 등이 뜨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서울 강북에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강남스타일로 반듯하게 구획된 거리, 현대식 빌딩과는 반대로 꾸불꾸불한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구식 2층 건물과 낡은 한옥 등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둔 채 골목 한 편에 화분을 두고 담장을 알록달록 색칠하는 등 저마다 사연을 담아내고 있다.
버려진 땅에 꽃과 나무를 심고 음침한 굴다리에 적힌 낙서를 지우고 끙끙대고 올라가는 계단 층층에까지 벽화가 그려졌다. 이러자 하나 둘 젊은이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었다. 작은 공방이 생기고 아담한 옷가게와 액세서리 집, 브런치 하우스와 아이스크림 가게, 수제 맥줏집과 같은 맛집이 생기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가 되는 곳도 있다. 파라솔이 펼쳐지고 탁자가 놓이자 예술가들의 벼룩시장이 열렸다. 캐리커처를 그려주거나 직접 만든 인형과 가방 등을 매대에 올려놓고 파는 사람들도 있고 어설픈 마술로 사람의 시선을 끌거나 수줍은 듯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변화라서 더 가치가 있고 생명력이 길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 태종 13년 군현제도를 새롭게 개편했을 때 태전(太田)으로 불린 대전 일대는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교통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이후 대전천 인근 천동, 효동, 삼성동을 중심으로 정미, 제사, 방적, 피혁 등 경공업이 생겨나며 근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북5도와 경기도의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대전은 출신 지역이 다양한 사람들이 고루 모인 새로운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대전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중심축이 완전히 서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동쪽 원도심의 쇠락과 함께.
이제는 서울 강북에서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대전에서도 일으켜보자. 골목길에, 도로 옆 화단에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피어나는 야생화를 심자. 담장에 낙서를 못 하도록 지키는 대신 아이들에게 붓을 쥐여주고 젊은이들에게 그라피티를 그릴 스프레이와 담장을 제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말이면 중앙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예술가의 거리로 만들어 보자. 푸드트럭과 거리 예술가도 초청하고 벼룩시장 좌판도 벌여주자.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을 변화시켜 강원도 봉평 장과 1913송정역 시장처럼 대전의 명물로 만들자. 목포행 완행열차가 멈춰 서면 재빨리 달려나가 가락국수를 사 먹던 많은 사람의 추억 속 대전블루스 대전역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대전역을 오간다. 아니 바삐 지나친다. 잠시 둘러보고 가게 할 순 없을까?
작은 변화에도 새싹이 움터난다. 베어 버려진 고목 밑동에 흙먼지가 쌓이고 햇살이 내리쬐면 새싹이 움터나는 기적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약간의 자양분과 햇살과 같은 관심,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다면 원도심을 다시 숨 쉬게 할 수 있진 않을까?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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