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 이미지 뱅크 |
우리는 살아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가상의 세계에 매료돼 자연을 무시하고 사람이 기계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조종한다. 관계를 멀리하고 편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이기에 누구나 기계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 자동화란 이름으로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수없이 빼앗아갔지만 모두 다 그렁저렁 믿고 산다. 서로 주고받는 교감과 믿음으로 소통하는 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IT가 비집고 들어와 너나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현실과 정을 나누고 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기에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혼밥족, 혼술족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8월 11일 국세청 사업자현황자료를 보면 5월 기준 생활밀접업종에 종사하는 사업자수가 약 146만 6천 921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1% 증가했다. 혼밥족, 혼술족이 급증하면서 편의점사업자수가 3만 2천 96명으로 작년대비 11.6% 늘었다. 패스트푸드점 사업자수도 3만 2천 225명으로 7.5% 증가했으나 일반주점사업자수는 5만 8천 149명으로 오히려 5.1%나 감소했다. 혼밥족, 혼술족의 증가로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 증가하는데 반해 식당과 술집이 줄어드는 생활밀접업종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모두가 관계를 무시하는 서양문화 범람 탓이라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요즈음 한국인은 박제(剝製)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속을 비우고 겉치레하기에 바쁘다. 최근 우리나라의 독서률이 일본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1.87권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보급률은 몇 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모두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지 책을 읽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대학교 앞을 가면 스마폰 가게와 화장품 가게, 술집은 즐비하지만 책방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실질적인 가치인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더 중히 여기다보니 인성보다 화려함을 챙기고, 감성보다 허울뿐인 웃음으로 포장하려한다. 딸을 키우려면 책값보다 화장품 값이 훨씬 더 든다. 유달리 색상과 향에 민감하여 한국인은 건강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름다운 색과 매혹적인 향에 빠져서 어쩌면 사는 것이 아니라 화학물질 늪 속에서 허우적거린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다. 화장품 속에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들어있는지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CFDA)이 오는 12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화장품안전기술규범“을 보자마자 나는 가슴이 턱 막혔다.
납 함유량을 기존 40mg/kg에서 10mg/kg으로, 비소량을 10mg/kg에서 2mg/kg(ppm)으로 제한하고, 추가적으로 카드뮴을 5mg/kg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 속에 독극물인 납이나 비소가 그렇게 많이 함유되었고. 카드뮴은 얼마가 함유되었는지조차 모르고 덕지덕지 발랐다는 말이 아닌가? 납과 비소, 카드뮴은 아주 유해한 물질이라서 폐수 배출허용기준에서도 각각 0.1mg/l, 0.25mg/l, 0.5mg/l(ppm)이하로 제한되는데, 이런 독극물이 함유된 화장품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다니 참 기가 찰 일이다. 먹는 것이 아니라 유해하지 않다고 둘러대지만 얼굴에 바른 것이 어찌 전혀 입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한번 체내에 흡수된 중금속은 쉽게 배출되지 않아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장품의 상당수가 한국제품이므로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
화장을 선호하고 납 성분이 과다하게 들어간 줄을 알면서도 미백화장품을 좋아하는 것은 서양문명에 매혹된 백인 숭배주의 때문이 아닌가? 황인종인 우리들이 어찌 우리 고유의 낯빛을 무시하고 백인종을 흉내 내려 그렇게 애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물질문명은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동양이 훨씬 우수하다. 중화패권주의와 식민사관에 속아 우리가 항상 외세에 억눌려 살았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천손사상과 다물정신으로 무장해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동북아의 패자(覇者)였고, 배달 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천하며 오히려 동북아를 보살폈다.
우리가 한민족의 위대한 정체성을 되찾으려면 하루속히 박제(剝製)가 된 삶에서 벗어나야한다. 인문학을 통해 속을 다지고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순수해지면 이루지 못할 게 하나도 없다. 수천 년을 이어온 천손사상과 홍익이념을 가슴에 채우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한민족 본래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보다 건실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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