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어머니 생신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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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어머니 생신 100주년

  • 승인 2016-11-08 14:01
  • 김천환(수필가)김천환(수필가)
▲ 김천환(수필가)
▲ 김천환(수필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여섯 자식을 양육한 어머니는 가족들의 옷가지도 대부분 손수 만들어 입혔다. 손빨래를 해서 숯불다리미로 다렸고 옷 수선도 직접 했다. 명절 때면 제사음식은 물론 찾아오는 일가친척들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 밤이 짧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해 냈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그런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어머니는 분명 슈퍼우먼이셨다.

환갑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홀로 되신 어머니는 시골에서 형님과 함께 사시면서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셨다.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실 때나 내가 시골을 가서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세월과 함께 어머니가 점점 늙어 가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달리 어떤 마음을 쓰지도 않았다. 가끔 몸에 좋다는 건강보조 식품이나 옷가지를 사다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뿐이다.

가끔 아프신데 없는지 어머니에게 여쭈어보면 허리가 좀 아프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신다. 나이가 드시니 늙어가는 과정이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허리가 차츰 차츰 더 구부러지신다. 그래도 여전히 농사일도 하셨고, 활동에 지장이 없어 보여 특별한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1년 넘게 못 가던 시골에 가서 만나본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가 더 구부러져 꼬부랑 할머니로 보였다. 어머니의 구부러진 허리를 처음 본 것처럼 몹시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척추와 허리주변 근육의 퇴행성 변화와 노인성 골다공증 때문이지만 고령이시고 생활이나 활동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소견이다. 아프면 침쟁이한테 침이나 맞는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처음 허리가 불편하시다고 하실 때 바로 병원에 모시고 가지 못했던 것이 크게 후회되었고 어머니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를 여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내 머리칼이 하얀 노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를 만나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고 가슴이 아파온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내 가슴 한 가운데 항상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는 허리는 구부러지셨지만 크게 어려운 병치레도 안하셨고 농사일도 하시며 87세까지 사셨다. 자식들과 함께 사셨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로운 30년이었다. 즐겁고 기쁜 날도 있었겠지만 허전하고 쓸쓸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있었던가?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어렵고 힘든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 말을 자주 못했을까? 거칠어진 어머니 손이라도 잡고 따뜻한 위로나 감사의 말씀 한번 제대로 못 드린 것이 몹시 죄송하고 아쉽기 짝이 없다. 내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훌륭하셨다는 이야기를 친구나 이웃에게는 많이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훌륭했다는 말을 어머니에게도 직접 말씀드렸더라면 무척 흐뭇하고 기뻐하셨을 것이다. 가끔은 반복해서 말씀드렸어도 자식 기른 보람도 느끼시며 더 즐거워했을 터인데 그렇게 못했다. 서로 얼굴을 비비며 가슴으로 포근히 안아 드리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도 자주 못했던 것들이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주 생각나고 후회된다.

함박눈 내리는 긴 겨울밤에 공부도 쉬어가며 하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고구마와 땅속에 묻은 김장독에서 퍼다 주시던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동치미국물 맛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옛날의 동치미국물 맛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이다.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이른 봄에는 마을 앞 금강에서 잡은 옆구리가 노란 복쟁이(황복)를 갖은 양념과 함께 가마솥에 끓여 주시던 시원하고 구수한 복쟁이국의 독특한 맛도 잊을 수 없는 내 어머니 손맛이었다. 언제인가 저승에서 어머니를 만나서 시원한 동치미국물이나 구수한 복쟁이국을 다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어머니 생신 100주년인 금년 가을에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悔恨)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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