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다음으로 가는 도시인 페티예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다. 유럽인들이 휴양으로 많이 오는 도시였고, 전 세계적으로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해서 사람이 많은 도시였다.
페티예로 넘어가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하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파묵칼레에서 만난 버스회사 직원이 능숙하게 한국어를 하면서 싸게 해준다고 했다. 어차피 장사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도 싸게 예약하면 그만이었다.
보통 240리라 정도면 사진, 동영상 포함해서 패러글라이딩이 가능하다. 몇 번 비싸다고 튕겼더니 200리라에 해주겠다고 했다. 약간 의심스러워서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동영상이랑 사진 다 포함인거 맞지?”
“응, 맞아. 다 포함한 가격이야.”
“진짜지?”
“응, 진짜야.”
예약확인증을 받아들고 못 미더운 마음이 들어 직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왜 찍어? 한국인은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야. 너랑 만난 것도 나한텐 추억이거든.”
내 말을 믿지 않는 다는 듯, 입을 삐쭉했다. 내가 사진을 어디 올릴지 모르기 때문에 치려던 사기도 접지 않을까 싶었다.
“너처럼 예쁜 한국인 여자 친구 만드는 게 내 목표야.”
“넌 잘생겼으니깐 예쁜 여자 친구 생길 거야.”
기분이 좋아 서로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한마디씩 주고받고 헤어졌다.
페티예에 도착해 어메이징한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령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보다 훨씬 멋졌다. 발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띄기도 했고 그새 사파이어 색깔을 띠기도 했다. 왜 패티예가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장소 중 1개 인지 알만 했다. 바다 뒤로 펼쳐진 집들은 체코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풍 분위기를 냈다. 사람들은 앉아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저마다 수다를 떨고 있다.
즐겁게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내려와 생일파티에 끼어 맥주한잔을 얻어 마셨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미지근한 맥주마저도 달콤하게 만들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에 사진과 동영상을 받으러 갔다. 이제 보트투어를 먼저 할까? 밥을 먼저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뛰어갔다. 그 때부터 시작일지 누가 알았을까.
레스토랑의 한 켠으로 날 데려갔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동영상과 사진 받으려면 130리라를 더 내란다.
“무슨 소리야? 난 분명히 사진, 동영상 포함해서 200리라 지불했는데.”
“니가 가져온 예약증에 사진, 동영상 안 쓰여 있잖아. 패러글라이딩만 200리라야. 사진이랑 동영상 받고 싶으면 돈 더 내야 돼.”
“얼만데?”
“130리라.”
“장난해?”
얼토당토 않는 가격에 어이가 없었다. 미리 찍어놨던 직원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난 너희 직원한테 전체 포함으로 예약했어. 전화해서 확인해봐. 나 직원 사진도 있어.”
“내가 얘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여기 연락처 몰라.”
“거짓말 하지마. 내가 파묵칼레에서 만난 직원이 여기에 연락했잖아. 그래서 너희가 나 픽업하러 왔잖아. 근데 연락처를 모른다고?”
“연락처 모른다니까? 그러게 왜 네가 다른 도시에서 예약하고 왔어? 네 잘못이야.”
1시간이나 이어진 말싸움은 끊날 줄 모르고 도돌이표였다. 직원들은 익숙한 관경이라는 듯이 팔짱으로 끼고 쳐다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 중이었다. 이 분노를 모두 표현하기에 내 영어실력은 너무 부족했고, 반면 직원은 영어를 너무 잘했다.
한참이나 화가 나서 인상을 찌푸리고 앉아있었더니 협상아닌 협상이 들어왔다.
“110리라 만 줘.”
“나 돈 없어. 90리라로 해.”
“안 돼. 110리라가 최소야.”
“나 학생이야. 진짜 돈 없어. 아르바이트해서 여행 온 배낭여행객이야. 너한테 110주로 나면 나 오늘 점심, 저녁 다 굶어야 돼.”
학생이라는 걸 어필했더니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못 이기는 척 사진과 동영상이 든 CD를 건네줬다.
“왜 CD야? USB라 그랬는데?”
“우린 CD만 취급해.”
그래, 그래라. 1시간 동안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싸웠더니 이젠 화낼 힘도 없었다. CD를 받아들고 숙소로 가는 차를 탔다. 밖으로 보이는 욜루데니즈 --해안가의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터키인들은 아무도 믿지 마.”
진이 빠져 멍하니 창밖만 보는 나에게 직원이 충고 아닌 충고의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라면 카파도키아, 파묵칼레에서 만났던 분과 계속해서 일정이 겹쳤다. 숙소에 혼자 있었다면 우울했을 텐데 하소연을 들어주셔서 맘껏 욕할 수 있었다. 해양 도시답게 값싸고 맛있는 생선요리와 술 한 잔을 하며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대만인 오펠리아와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인생경험이었을까./전민영 미디어아카데미 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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