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묵는 기간 동안 전체 호스텔에 한국인은 나 한 명뿐이었고, 혼성도미토리로 예약돼있었다. 나는 23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다 온 토종 한국인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을 귀에 못 박히게 들어왔다. 7세는 아니어도 20세가 넘는 나이에 휴식공간을 공유한다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여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무색하게 외국인 남자 2명이 사이좋게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자 한 명만 자고 있었다. 체크아웃 하는 날이라서 빨리 짐싸고 피쉬마켓 쪽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페티예에 머무는 2일 동안 제대로 버스를 타고 돌아온 적이 없다.
터키 미니버스는 체계가 좀 특이하다. 탈 때 버스기사에게 직접 돈을 내고 목적지를 말하면 데려다 준다. 하지만 여태까지 내가 탄 버스운전사들은 내 숙소 위치를 몰랐다. 심지어 숙소는 너무 외져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다른 건물을 알려줄 수도 없는데 기사들이 숙소를 모르니 버스타고 돌아올 수가 없었다. 이틀 모두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차와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도 없어서 시내 쪽으로 숙소를 바꾸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숙소를 검색하며 조식을 기다리는데 옆에 자던 애가 일어나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앙카라 보건복지부(?)에서 국가공무원인 토가. 명절휴가를 맞아 페티예로 휴가를 왔고, 같이 온 친구는 오늘 새벽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했다.
“오늘 뭐할 예정이야?”
“아직 안 정했어. 일단 숙소 옮기고 나서 생각하려고.”
“나 오늘 사르트르라는 협곡에 갈껀데 같이 갈래?”
매우 의심했다. 여러 정황을 따져 본 결과 얘도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 여행객이었다. 결정적으로 영어를 못했다. 터키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하는데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다면 사기꾼, 가이드 둘 중 하나다.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영어실력이 영 별로였다. 영어를 못하니 사기꾼도 아니었다.
하루쯤은 현지인 따라다니는 것도 나쁠 것 같진 않았다. 알겠다고 같이 가겠다고 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현지인하고 같이 다녀서 가장 좋은 건 알아서 교통을 해결해 준다는 점이다.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가량 교외로 달리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르트르’라는 협곡이었는데 생각보다 멋진 곳이었다. 각종 엑티비티로도 유명했다. 미리 알려줘서 바지를 입었다면 번지점프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오늘 잘 입지도 않는 원피스를 입었는지 모르겠다. 토가는 신발을 갈아 신더니 나보고 신발을 대여해서 갈아 신으랬다.
“아니야. 난 샌들이라서 괜찮아”
괜찮을 둘 알고 됐다 했는데 질퍽한 진흙과 역동적인 물길의 개울이 이어졌다. 물살이 꽤나 거센 강가와 진흙이 질척대는 험한 길이 이어졌다. 생각보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서 한 두 번 토가의 손을 잡고 갔는데 시간이 갈수록 스킨쉽 강도가 짙어졌다.
버스비랑 입장료를 모두 내 준 토가에게 미안해서 아까부터 식사는 내가 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배고픈 것 같아 2개 주문해줫더니 2개를 후딱 해치운 토가는 다시 자기가 계산할라고 했다. 정말 화가나서 이건 내가 계산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더니 그 때서야 돈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이 고집쟁이는 숙소로 가는 길에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했다.
피곤한데 숙소까지 걸어가자고 한다. 그래, 운동도 할 겸 좋다고 알겠다고 했지만 이어지는 질문공세들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토가가 돌아오고 다세 패티예로 돌아갔다. 자기 어깨에 기대서 자라는 토가의 제안을 웃으면서 거절했다. 한 두번 영어로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했더니 확인사살을 하려ᅟᅳᆫㄴ 듯 번역기를 쓰면서 까지 ‘남자친구있냐?’고 물어봤다. 헛된 기대는 심어주면 안될 것 같아 있다고 했더니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 한마디 한마디에 지나칠 정도로 기뻐하고 우울해하는 이 친구를 보며 당황스러웠다. 우리 오늘 처음봤는데...
귀찮아서 있다고 했더니 시무룩해졌다.
길을 따라 펼쳐진 바닷가는 너무 아름다웠다. 너무 예쁘다. 숙소에 들어와 같이 수영하자는 제안을 수영복이 없다고 거절했다. 정말로 수영복이 없었다. 계속해서 거절만 하다보니 미안해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나가있는 동안 씻고 나왔더니 맥주한잔을 하자고 한다. 비싼 디저트를 얻어먹었으니 맥주 한잔 정도는 내가 사기로 했다. 문제는 맥주한잔 하는데 바닷가까지 나가자고 하더니 야릇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나 내일 이스탄불로 떠나야 돼서 들어가서 계획 짜야겠어. 나 먼저 들어가볼게!”
그나마 다행인거 어두워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이없다는 표정이 아니었을까? 정말 매너 없어 보이지만 혼자 획 들어와 버렸다.
방으로 들어와 먼저 잠들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나는 먼저 아침식사까지 끝내버렸다. 뒤늦게 토가가 일어났고 난 짐을 거의 싼 상태였다.
“아침 먹으러 가자.”
“어...미안. 난 오늘 체크아웃 하는 날이라서 벌써 먹었어!”
“오늘 떠나? 하루 더 머무는 거 어때?”
“안 돼. 비행기 예약해놔서 꼭 가야 돼. 미안해.”
벌써 먹었다는 대답에 표정이 굳어졌다. 왜 사과를 했는진 모르지만 토가의 표정을 보니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씩씩하게 짐을 싸며 대답했더니 곧 접은 듯 했다.
“페이스북을 연락할게. 여행 잘해.”
“응! 어제 데리고 다녀줘서 고마워. 너도 여행 잘해!”
뢘스가 생길 듯 말 듯, 스쳐지나간 터키친구 토가./전미영 미디어 아카데미 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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