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삭막해져갔다.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기라도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상을 쓰며 상대방을 노려본다. 겨울이 되면 빨간 종을 흔들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던 구세군 냄비는 날이 갈수록 가벼워졌다. 인터넷에서도 공격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소한 일에도 편을 나누며 싸우기 바빴다. 유행어마저도 팍팍하다. 조금만 싫은 대상이 나타나도 “000 극혐 (극도로 혐오한다)” 라며 비방한다. **충이라며 남을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길을 물어보시는데 잘 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 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든다. 짐을 잔뜩 들고 있는 행인을 봐도 도와줘야 된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대문을 잠그지 않아도 걱정이 없던 옛날과 달리 경비실을 다녀올 그 잠시 동안에도 문단속을 꼭 해야하는 지금이 답답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조그만 주택이 즐비할 때 보다 이웃의 수는 많아졌는데 더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친구라면 그저 조건 없이 함께 어울리고 놀았던 아이들도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으로 부를 측정하고 무리를 짓는다. 유치원생 때부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친구하고만 놀라고 교육을 받는다. 부모가 솔선수범해서 그런 집 학부모들과 친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어린 아이들에게조차 순수한 우정 보다는 영악한 계산이 먼저이길 요구한다.
가장이 혼자 경제활동을 해도 살림을 하고 저축을 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가정이 태반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풀 마음이 사라져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추운 겨울, 더불어 살아간다면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김유진 미디어 아카데미 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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