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27분.
벌룬투어 픽업차량을 위해 3시부터 일어나 기다렸는데 차는 오지 않는다. 카파도키아는 벌룬투어로 유명하다. 새벽녘마다 뜨는 수백 개의 벌룬이 장관을 이룬다. 아침마다 수백 개의 벌룬이 카파도키아 하늘로 떠오른다. 사고는 일어나지만 얼마 전 미국에서 벌룬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벌룬에 타고 있던 15명의 관광객이 모두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려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불안감 때문에 취소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여행을 오지 않았을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안전검증을 받은 큰 회사에 예약하는 방법 뿐 이었다.
어제 분명 4시 15분에 벌룬투어 픽업을 온다 그랬는데 50분을 잘못 들었나보다. 일어나기 힘들면 아침에 깨워 준다던 스태프도 안 오고 차량도 꼬빼기도 안 보인다. 덕분에 1층 테라스에 앉아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찬바람이 옷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춥다고 실내로 뛰어들어갔을 텐데 여행이 뭐라고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찬바람까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아직 한밤중이 카파도키아의 밤하늘엔 별이 쏟아져 내렸다. 일직선으로 별들이 유독 많아 강줄기 같아 보인다. 저게 은하수라고 믿고 싶은 나의 착각인건가?
5시가 되자 픽업차가 도착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투어라서 한국인이 한명쯤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인이 단 한명도 없는 것 보면 지난달에 일어난 쿠데타와 테러들이 영향력이 크긴 했나보다. 인터넷에서도 투어나 숙소 예약을 취소한다는 글을 종종 봤지만 이 정도로 썰렁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덕분에 여유롭고 한가롭게 여행할 수 있었지만 조금은 외롭기도 했다.
조금씩 밝아져 오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벌룬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커다란 벌룬에 사람들이 매달려 풍선을 부풀리고 있는 중이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 쪽에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어느 정도 외로움과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커다란 바스켓에 사람들이 나눠 탔다. 나는 한 터키 부녀와 같은 섹션에 타게 됐다. 바스켓이 꽤 높았는데 나름 씩씩하게 올라탔다. 카파도키아에 놀러온 부녀는 내내 사이가 좋았다. 서로 끌어안고 계속 속삭이며 쉴 새 없이 장난을 쳤다. 1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아빠와의 여행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다정한 부녀의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아빠랑 저렇게 다정했던 적이 있었나? 우리 아빠는 표현이 없는 편이라 저런 소소한 애정표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다가가면 될 텐데 나도 애교 많은 막내딸은 아니었다. 집에서는 더 무뚝뚝한 딸이 되기 일쑤였다.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다만 아빠랑 단 둘이 저렇게 신나게 다닌 적은 없었다.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풍선을 타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니 응회암 지대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는 물결치는 비단 같았다. 저 멀리서 빨간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저마다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 와서 처음 본 일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일출을 보며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 남은 45일,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내가 비워놓고 온 자리를 메워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전민영 미디어아카데미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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