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 또 하나의 절경이 있다면 색색의 기압괴석과 그 위에 올라가서 보는 석양. 물론 혼자 찾아가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 석양을 볼 수 있는 로즈벨리투어를 하기 위해 3시까지 숙소로 들어왔다. 테라스에서 기다렸는데 한 참 후에 3시가 아니라 5시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쩐지 석양투어를 대낮부터 오라는 게 이상하긴 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2시간이나 테라스에 죽치고 기다렸다. 약속한 5시가 됐는데도 투어 차량이 오지 않는다. 뭐 때문일까.
한참 뒤에 숙소 스탭이 전화를 건네줬다. 숙소를 운영하는 한국인 주인이셨다. 사과 먼저 하신다. 오늘 내가 예약한 로즈벨리투어는 최소 2명 이상이어야 투어를 진행한다. 오늘 예약자는 원래 3명이었는데 아까 2명이 취소를 했다며 여행사에서 투어를 캔슬하겠다는 통보가 왔다고 했다. 당황해서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내가 2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시 투어 사에 부탁해본다며 10분만 기다려 달라하셨다. 의도치 않은 개인 투어다. 잠시 뒤에 다시 전화가 오더니 투어 사에 부탁했다며 5분~10분 후면 투어 차량이 온다고 기다려 달란다. 사장님의 배려덕분에 15여명이 해야 하는 투어를 일대일 투어로 받게 됐다.
10분 정도 있으니 투어 차량이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로즈벨리 투어 시작 장소에 내렸다. 정말 나 혼자였다. 이제 막 꺾어지려 하는 햇빛을 받으며 가이드와 나 단 둘이 서 있었다. 가이드는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걷기만 했다. 정말 걷기만 했다. 하기 싫으니...?
유적지가 나오니 자기소개를 하고 설명한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1층은 부엌과 화장실, 2층은 방이, 3층은 비둘기 집이었단다. 종교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사람들은 비둘기를 키워 고기와 알을 함께 먹었다. 때문에 주변 건문들을 보면 모두 맨 꼭대기 층에는 비둘기 집이 많았다. 자유 시간을 줄 테니깐 구경하라는데 나 혼자 보는 게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내가 인터넷으로 본 투어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로즈벨리투어는 정말 많이 걸어야 한다. 나는 체력이 좋아서 잘 걷는 편이다. 이런 내가 “얼마나 더 가야돼?”라고 물을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네 발로 기어가지 않을까 싶다. 같이 가는 가이드도 나중엔 숨을 헉헉댔다. 거기다가 누가 터키는 더우니깐 샌들신고 가라 그랬는가. (아무도 그런 적 없다.) 샌들 신고 갔더니 발이 난리가 났다. 분명 유럽여행을 왔는데 어느새 난민이 돼 있었다.
고생해서 올라간 로즈벨리는 너무 예뻤다. 아름다운 풍경에 수백 번 감탄했다. 카파도키아 기압괴석은 응회암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번의 나눠진 축적으로 단층이 생겼는데, 단층마다 인, 황 등 성분이 다르다. 때문에 계곡을 이루는 암석의 색이 빨강, 분홍, 주황, 노랑 등 장미색으로 이뤄져서 이름이 로즈벨리라고 했다. 다른 얘기도 있는데 붉은 계통의 단층이 많아 노을이 지면 계곡 전체가 다 붉게 물들기 때문에 로즈벨리라는 얘기도 있다.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지금 이 감정은 담기지 않는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은 그냥 인터넷에서 흔히 보던 어떤 사진이었다. 그래 흔하다. 흔하디흔해서 2번도 안 볼 거 같은 사진이었다. 내 감정까지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벅찬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이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여기 너무 예쁘다고, 한국보다 더 예쁘다고 했더니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고 살짝 우쭐댄다. 하지만 자기는 여기가 지겹단다. 매일같이 여기에 왔고, 태어나고 한 번도 다른 지역에 산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왜 다른 지역에서 산 적이 없냐고 물었더니 바보냐는 표정으로 “일해야지”라고 대답했다. 아...그렇지.... 미안.
한참을 걸어 석양 보는 전망대(sunset point)로 갔다. 진짜 와 벅찼다. 1시간 넘게 발에 흙먼지 묻히며 걸어온 길이 아깝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암석들이 한 눈에 다 보였고, 석양이 비쳐 발로 표현 못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다. 주말 아침마다 김치찌개에 밥 먹으면서 보던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내가 들어왔다. 집에서 tv로만 보던 그 곳에 두 발로 걸어서 직접 왔다. 로즈벨리 너머로 내려가는 석양에 가슴이 벅찼다./전민영 미디어아카데미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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