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 남쪽에 위치한 체스키 크롬로프.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소도시다. 체코에서 왕복 4시간 정도 걸리지만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당일치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는 체스키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야경보고 재즈바까지 다녀왔더니 온몸이 피로해 짐도 제대로 못 쌌다. 체스키로 가는 차안에서 부랴부랴 숙소를 예약했다. 체스키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숙소는 아침이라 그랬는지 아무리 벨을 눌러도 답이 없었다. 한참이나 기다리다 벨을 미친 듯이 누르자 마지못해 한 남성이 나왔다.
“누가 이렇게 아침부터 벨을 미친 듯이 눌러대는 건가 했더니, 그대였어?”
민박집 주인이던 이 분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괴짜 같기도 하고, 예술의 혼이 가득한 예술인 같기도 했다.
가끔, 평범하면서도 오글거리는 말들이 신선한 충격이 되기도 한다. 아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장님은 아침식사 내내 옆에 서서 숙박객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사장님은 언변이 좋았다. 얘기는 여유로우면서 매끄럽게 흘러갔다.
“솔직하게 말해서 유명관광지에 가서 사진 찍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100명이면 100명 다 할 수 있는 평범한 거야. 근데 그대들과 내가 만나서, 이렇게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을 너무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만나서 인연을 맺고, 아 좋은 대화를 나눴구나. 하고 깨끗하게 털고 헤어지는 거.”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부질없다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저렇게 말을 하는 사장님의 가치관이 신기했다. 사실 100이 가본 유명한 장소는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억울하지 않게 남들 가는 곳은 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을 가지 마말고 여행을 가라.”
작년에 라오스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선교사님께서 하시 말이다. ‘셀카봉 들고 캐리어 끌고 사진 찍고 다니는 관광이 아니라 정말 여행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별거 아닌 이 말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갖다 줬다. 그 동안 캐리어 끌고 예쁘게 입고 다닌 나의 여행은 여행이었을까 관광이었을까. 물론 커다란 배낭 메고 너저분한 모습을 하고 다니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나는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아무것도 원하는 것 없이 오직 쉬고 싶다고 하기에 유럽은 너무 기회비용이 크지 않은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여행의 정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여행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유적지를 도는 일정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느긋하게 쉬는 휴양을 선호한다. 쇼핑을 빼놓을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자기 몸만 한 렌즈를 들고 다니며 일할 때 보다 더 열심히 사진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여행의 정의를 내리고 그 여행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 나 또한 그렇다.
더 좋은 여행, 진짜 여행이란 정의는 없다. 기준이 다를 뿐. 다만 다른 각도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세상엔 수억 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단어에도 각자가 가진 수억 가지의 시각이 있다. 보편적인 시각은 있지만 절대적인 시각은 없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돈과 시간 들여서 여기까지 왔다. 기왕 온 김에 억울하지 않게 많이 가자.’ 이전까지 내 여행 관이었다.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전민영 미디어아카데미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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