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20년의 시간을 건너 다가온 상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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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20년의 시간을 건너 다가온 상실의 의미

  • 승인 2016-11-02 14:15
  • 신문게재 2016-11-04 12면
  • 김진용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김진용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2013 刊
▲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2013 刊
각종 언론과 SNS 등 미디어에서 좋은 책으로 소개되면 꼭 읽어야 하는 책처럼 여겨져서 마지못해 읽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하다. 그러나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은 독자들에게 '책을 훑어보고 지루하면 과감하게 읽기를 포기하라'고 권한다. 의무감에서 책을 읽거나 베스트셀러라서 읽게 되면, 저자가 전달하려는 진정한 의미보다는 글자 판독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20대 혹은 30대 때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소설도, 마흔 아니 그 이상이 되어 다시 읽으면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이 나에게는 그런 책인 것 같다. 스스로를 나름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며 지적 허영심이 충만했던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하였고 그때는 제목이 '상실의 시대'였었다. 20페이지를 겨우 읽고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탄식을 하면서 책을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읽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끝까지 오기로 읽긴 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글자 판독만 한 경우라 사실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당시 어떻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진정한 사랑이나 청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이십대 초반 청년이 말이다. 이 소설이 민음사에서 원제 '노르웨이의 숲'으로 다시 발간되었을 때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설레었고 다시 읽었을 때의 작품은 예전의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노르웨이의 숲'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으로 작품을 보다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에 역점을 두었다고 한 출판사 리뷰처럼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을 한 듯하다. 번역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내가 20대 초반이 아니라 30대 중반(직장생활, 결혼 등을 경험한)이 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필시 있을 것 같다.

줄거리를 간략히 살며보면 와타나베는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우연히 듣고, 젊은 날을 회상한다. 어느 날 유서 없이 자살한 고교시절 친구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에 대한 기억.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지속적으로 만나며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고 연극사 시간에 알게 된 적극적인 성격의 미도리와도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 있던 나오코가 자살을 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와타나베는 무작정 여행길에 오르게 되지만 나오코에 대한 상념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얼마 후 나오코가 자살하던 날 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혼란에 쌓여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 미도리의 “어디 있어?”라는 질문에 와타나베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항상 그렇듯 성적 모티브 아래 숨겨진 결핍, 상실, 그리고 한 인간의 성장을 다룬다. 특히나 이 작품은 무라카미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더 강하게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무라카미식 소설의 축약판이다.

어느덧 기성세대 가까이에 있는 나에게는 그러나 여전히 완벽한 이해를 하기에는 난해한 소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오코의 애잔함과 그녀가 왜 정신분열까지 이르게 되고 자살을 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한 공감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이끌림이 있다. 가슴 아릿함이 있다. 무의식적인 내면의 공감을 통해 나의 청춘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게 하는 힘이 있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책일 것이다. 예전에는 감흥 없던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독서하기 좋은 가을날에 20대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꺼내 볼 수 있는 여유를 찾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진용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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