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실태와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국내의 사회적 자본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니 경제선진국 도약의 결핍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해 경제 저성장을 극복해 나가자는 제언이다.
이 보고서는 가장 먼저 기업들이 정부와 국회, 근로자에게 신뢰의 자본을 쌓아가야 하고 노조도 제 몫 챙기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정부도 '이건 하라, 이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일일이 규제하는 것에서 벗어나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의 틀을 바꿔야 하며 국회는 토론과 타협을 통해 국민과 약속을 지켜나갈 때 경제 재도약을 일궈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신뢰의 신(信)성장론이다.
OECD가 35개 회원국의 사회신뢰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불신의 장벽은 심각한 수준이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한국은 26.6%만 그렇다고 답해 전체에서 23위를 차지했다. 덴마크가 74.9%로 사회신뢰도 순위가 가장 높았고 노르웨이 72.9%(2위), 네덜란드 67.4%(3위) 순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38.8%(13위), 미국은 35.1%(17위)였다.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역시 한국은 27%로 34개국 중 33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사회적 자본의 현주소가 국제사회에서 바닥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회네트워크 수준도 최하위권으로 분류됐다.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설문에 '그렇다'는 한국 국민의 응답은 77.5%에 불과해 35개국 중 34위에 올랐다.
국가별로는 이스라엘이 97.3%로 1위를 차지했고 아일랜드 96.7%(2위), 덴마크 95.8%(3위), 영국 95.2%(4위), 스위스 95.0%(5위) 등이었다.
사회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일자리와 투자 등 경제활동 기회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네트워크를 사회자본으로 인식하고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한상의가 서울대 김병연 교수팀의 자문을 받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재 27%인 한국의 사회신뢰도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수준(69.9%)으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 1.5%포인트 상승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信)성장동력만 잘 쌓아도 현재 2% 후반인 성장률이 4%대로 도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경제주체 간 신뢰를 구축하려면 '사회규범'과 '사회네트워크' 확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규범의 작동은 신뢰제고의 필요조건이지만 한국의 사회규범지수는 100점 만점에 86.6점(17위)으로 조사대상평균(88.2점)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일본이 93.8점으로 가장 높았고 스위스 92.6점(2위), 네덜란드 92.2점(3위), 이탈리아 92.0점(4위), 캐나다 91.4점(5위)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자본 축적을 위한 최우선과제는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이다.
보고서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낡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지만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관련법안들은 경제주체 간 불신으로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며 “규제의 근본틀을 바꿀 규제개혁특별법은 2년째 미제, 청년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의료민영화 가능성'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5년째 장기미제인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경제관련 입법발의 중 3분의2가 규제입법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경제가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이행된 만큼 자율규범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업의 자유로운 운신을 보장해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동시에 “기업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윤리규범을 만들어 책임경영의 관행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지속가능성장, 사회복지 확대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관심과 참여를 넓혀야 국민적 지원이 뒤따를 것”이라고 기업의 변화를 주문했다.
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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