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 이미지 뱅크 |
인생은 세상위에 조금씩 나를 그리는 것이다. 꿈은 구도이고 살아가는 모습은 채색이다. 울긋불긋 어지럽게 그려진 그림을 보면 탐욕으로 인한 방종이 많이 눈에 띤다. 맘몬의 사주로 흩어진 시간들이 구도를 망가트리면 대대로 손가락질을 받는 졸작이 된다. 화룡정점이 백미이듯 노년의 삶이 끼끗해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사람마다 화려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비리와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스스럼없이 비리를 쫒는다. 이미 다 알려지고 그 정황이 모두 들어났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타인에게 먹물을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대한민국 검사는 남자를 여자로 만들거나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다. 기상청은 잦은 오보로 양치기라는 비난을 넘어 청소년들에게 중국과 일본으로 기상망명을 떠나게 했다. 태풍경로와 위력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10월 2일 오후 3시에 차바가 일본 오키나와를 관통한 뒤 방향을 틀어 가고시마 쪽으로 상륙할 전망이어서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예보했다가 4일 오후 2시에서야 제주도와 남부지방이 태풍의 중심권역에 위치해 피해발생이 우려된다고 보도해서 방어준비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피해를 키웠다.
국민안전처는 경주지진이 강도 5.8의 강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알림문자 하나 제때에 날리지 못했다. 비리가 만연한 법조계와 탈선사고를 훈련으로 조작한 인천교통공사를 보면 대한민국은 비리공화국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탐욕에 눈이 뒤집혀 순간적으로 죄를 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수를 범했으면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데 그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4대강에 녹조가 뒤덮였는데도 잘못이 없는 양 이명박은 떳떳하고, 매번 늑장대응으로 사고를 키웠으면서도 전혀 죄스러워하지 않는 정부라서 박근혜정부의 신뢰도가 완전히 바닥이다. 어찌 이렇게 뻔뻔하게 국민을 무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봉건주의 시대에도 천재지변이 나면, 심지어는 가뭄만 오래 지속되어도 임금이 스스로 내 탓이라고 읍소하며 천제를 드려 국민을 위로했는데, 민주사회 대명천지에 진심어린 사과 한 번 없고 오히려 측근들의 비리를 덮으려고나 하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다.
이 모두가 긍정주의가 낳은 병폐이다. 긍정주의는 개선해야 할 것들을 개선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사회를 비리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맹목적 긍정주의는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해물이며 불행의 단초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식의 논리로 살면 나태해지고 무능해진다. ‘세월이 가면 좋아지겠지’라며 기다리다가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으면 심한 좌절에 빠지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짙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을 선택한다. 긍정주의자가 비판주의자보다 자살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긍정주의는 기득권자들이 대중을 어리석게 만들기 위하여 전파하는 꼼수이다. 종교와 정치권력, 기업권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낙관적인 사고를 유발시키려한다. 신복음주의와 기업계가 결합하면서 긍정주의가 무섭게 확장됐다. 비관과 절망, 의심을 싫어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를 행복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고된 삶에 대한 비판과 좌절을 막기 위해 내세를 들이민다. 인생은 잠시 나온 소풍에 불과하다고 둘러대며 핍박에 반항하지 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강조하므로 핍박이나 위기의 징후에 눈을 감게 만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긍정주의를 부추기는데, 정 맞아 다듬어지면 더 예뻐질 수도 있는데 왜 그것이 문제인가?
현실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지 꼼꼼하게 살펴보면 비판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회가 이 만큼 발전한 것도 비판주의 효과이다. 맹목적 긍정주의만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봉건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배우고 익혀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그러려니 인정하고, 정치에 눈감고 귀 막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사회가 정화되길 원한다면 과감히 맹목적 긍정주의를 버리고 비판주의나 비판적 긍정주의의 삶을 살아야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도 비판적 사고를 멀리하지 말고 항상 실패를 의식하거나 예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부조리를 은폐하기 위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권장하는 맹목적 긍정주의를 버리고 비판적 사고와 한발 더 가까이 하면 당장은 괴롭고 힘들지 몰라도 사회의 부패를 막아 후대의 삶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단언컨대 유아적 사고방식인 긍정주의를 포기해야 평화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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