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연 오산초 교사 |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게 학교에 도착하여 먼저 온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니 깍쟁이 하민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이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현구가 “선생님이 학교하고 사랑에 빠지셨나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무슨 일인가'하며 거울을 보니 오늘따라 두 볼에 블러셔가 과하게 칠해져 있다. “아니, 너희들 어떻게 알았어? 선생님이 우리 반하고 사랑에 빠져서 그런가봐” 너스레를 떨며 아이들과 같이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아이들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보니 너무 예쁘고 순수한 말이다.
'선생님이 학교와 사랑에 빠져서 볼이 빨개졌다'고 생각하려면 얼마나 순수해야 할까. 사실이 아닌 것이 미안했다. 학교와 사랑에 빠져 볼이 붉어지진 않아도 아이들과 흠뻑 사랑에 빠질 수는 있을 텐데.
올해 3월, 교직 경력 2년차에 처음으로 1학년을 맡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병설유치원 선생님에게 올해 신입생이 유난히 데설궂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더욱 그랬다. 1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며 학부모들에게 쓴 담임소개 편지에 '사랑 받는 아이, 사랑을 베푸는 아이로 가르치겠다' 약속했었다. 나 스스로도 '어떤 아이라도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교육의 방식에 정해진 답은 없을지라도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만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우리반 13명의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한 명, 한 명 바라보고 있자면 말 그대로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회 시간에 줄을 세워 강당으로 가려면 13번은 족히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줄을 세워야 했다.
국어 교과서를 한 번 펴려면 서너 명의 아이들이 '국어'라는 글을 읽지 못해 울상을 지으며 이 책, 저 책을 꺼냈다 넣다 하다가 결국엔 모르겠다며 울기도 했다. 가정의 형태도 다양하고 성격도 가지각색, 학습능력도 천차만별이었다. 아이들마다 요구(Needs)가 달랐고 나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관계 맺기가 서툰 아이, 한글 보충학습이 필요한 아이, 애정결핍의 아이 등. Wee센터의 상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한글 보충학습 자료도 만들면서 바쁘게 보냈다. 일이 없어도 마음은 항상 동분서주하며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나의 욕구는 충족이 되질 않았는지 이곳저곳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며 어서 주말이 오기를 빌었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이 학교랑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라는 아이들의 말에 웃음 지으면서도 속이 시렸다.
우리 반 아이들의 절반은 아직 한글을 쓰는 것이 어렵고 서툴다. 그렇지만 종종 나에게 새초롬하게 와서는 시(時)를 선물해주고 간다.
“선생님, 이제 시원한 바람이 부니까 왠지 소풍 갈 것 같아요” 우리 반 아이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은 전부 다 아름답다.
'한글이 좀 늦으면 어떠니. 이렇게 예쁜 말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으면 받아쓰기 잘 못해도 괜찮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에만 너무 집중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대로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다.
좀 더 성숙해져서 더 많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진하게 칠한 블러셔 없이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선생님이 우리들이랑 사랑에 빠졌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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