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숙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서 선택과 결단을 요하는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한다. 두 딜레마는 얼마 전 많이 읽혔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언급된 상황이기도 한데, 이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묻는 압박 질문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두 가지 질문에 지혜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열띤 토론의 장을 펼쳤다. 그 결과 <철로의 딜레마>에서는 다섯 모둠 모두 한 명을 구하는 것으로, <선장의 딜레마>에서는 선장이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결정하되 구성원 중 자발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학생들은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짐작하듯 위기상황이나 갈등이 치달을수록 리더의 역할은 중대하다. 리더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감정이입을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것, 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며 공정한 관점과 가치관을 정립할 때 비로소 성취되는 능력이다.
여기에 더해 리더는 근본적으로 '죽음'을 존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상식 없음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로 발생하는 '사회적 죽음'을 우리는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 세월호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청년의 사건은 편법과 이윤과 안전불감증 등이 결합되어 발생한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죽음들이다. 317일 동안 고통스럽게 견디다 숨을 거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의 무책임성은 실망을 넘어 을씨년스럽고, 사인을 두고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도 사회의 비판과 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을 송두리째 망각하고 있다.
작은 공동체를 포함해 국가의 리더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주체로 여겨야 한다. 이정록 시인의 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묵상하듯 들려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 가슴, 구름에 젖는 깃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겐 죽음을 소중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아프고 야속하고 섭섭해도 발맘발맘 다가서며,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려운 마음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 목소리들과 함께 울고, 구름에 젖는 깃들을 눈망울로 망망 가슴에 품으며, 애도의 윤리를 저버리지 않는 리더가 우리를 살게 한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다르지 않다. 한 생명의 죽음은 그 존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폭력적인 상황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마지막 퍼즐이 지금이라도 맞추어져 생이 온전하게 완성되길 바란다. 우리 시대 리더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며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