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뉴스 화면 캡쳐 |
아얏!
쓰레기봉투를 버리려다 갑자기 뜨거운 통증이 스쳤다. 쓰레기봉투가 닿은 다리엔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냥 아프다 정도가 아니라 뜨겁다라고 느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쓰레기봉투를 뚫고 뾰족하게 고개를 쭉 내밀고 있는 반짝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일단 다리를 타고 흐르는 적지않는 피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마침 하교를 하던 딸이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서둘러서 함께 집으로 들어 온 딸은 알아서 구급상자에서 소독약과 연고, 반창고를 챙겨왔다. 소독약으로 씻어내니 깊게 파인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한 눈에도 꿰매야 할만한 상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이 다 그렇듯 웬만해선 병원을 찾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단단히 끌어당겨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상처가 잘 아물든 못 아물든 그건 내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나저나 도대체 쓰레기봉투 안에 그 반짝이던 게 무엇인지가 온통 내 관심사였다.
아! 며칠 전 내가 실수로 깨뜨렸던 유리병을 남편이 도와준다고 싸서 버리더니 그것이 화근이었다. 당연히 나와 같이 안전하게 버렸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확인을 안 하고 그냥 두었던 것이 이리 피를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급했다. 환경미화원께서 손대기 전에 어서 치워야만 했다. 이대로 쓰레기봉투를 둔다면 쓰레기를 수거해 가시는 환경미화원들께서 다칠 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로 인해 많은 환경미화원들이 크게 다치시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접한 적이 있었다.
나는 테이프를 챙겨 딸을 데리고 다시 쓰레기봉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주변에 종이박스를 찾았다. 왜냐하면 유리조각을 막아내기에는 종이박스의 두꺼운 종이가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작은 상자를 찢어 삐져나온 유리조각에 딱 대어 보는 순간 그 자그마한 유리조각은 ‘그깟 종이로 나를’ 라고 비웃듯 두꺼운 종이를 뚫고 얕잡아 본 나의 손가락에 또 한번 상처를 입혔다.
‘아~ 이렇게 두툽한 종이도 뚫고 나올 정도니 얼마나 위험한가! 이것을 환경미화원이 무심코 들다간 손이고 팔이고 크게 다치는 건 당연한 일이겠구나’ 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종이박스 두 조각을 겹쳐 대고서야 유리조각을 감당할 수 있었고 집에서 가지고 나온 테이프로 쓰레기봉투와 종이박스 조각에 몇 겹을 두르고 나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대중목욕탕에서 유리조각에 심하게 발을 베인 적이 있었다. 목욕탕 주인은 어제 온 손님 중에 음료수 병을 깨뜨려서 치운다고 치웠는데 조각이 남았었나 보다며 혹시 이 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고개가 떨어지게 숙여 사과를 했었다. 그렇게 유리조각의 무서움을 겪은 후 나는 유리를 버릴 때 꼭 신문지에 안전하게 몇 겹으로 싸서 버리는데…….
나에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면 환경미화원이 크게 다칠 뻔 했다. 나만 괜찮으면 남은 어찌 되든 괜찮다는 생각은 남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또한 위험한 일이다. 남들이 그리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나에게도 피해가 돌아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닌 남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 게티 이미지 뱅크 |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80세의 아주 훌륭한 랍비가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들은 “선생님, 왜 우십니까? 선생님께서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자선을 베푸셨으며 이 나라에서 존경받는 삶을 사셨는데요” 라고 묻자 랍비는 “만약 사는 동안 너는 남들과 섞여서 잘 살았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아니오’라고 밖에 대답할 말이 없네. 그래서 울고 있다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아무리 훌륭한 학문과 인격을 갖추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세속에서 자신을 격리시킨 채 10년 동안 학문을 익히고 자기 수양에만 전념한 자라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며 용서를 구할 만큼 큰 죄악으로 여겼다 한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사회생활을 중요시 했다.
공자도 ‘인자애인(仁者愛人),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사람이 나와 더불어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면 많은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고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을 것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안겨줄 뿐 아니라 자신 또한 좀 더 평탄하게 살 수 있게 한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다른 사람부터 배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쓰레기를 버리면서 생긴 상처 덕분에 딸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게 되어 기뻤다. 위험한 것은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며 그것이 남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게 하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일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남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계기가 되어 감사하다.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속에서 작은 지혜를 익혀가는 것이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김소영(태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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