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서는 벌써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고구마, 땅콩은 물론이고 들깨와 참깨도 캐고, 따고, 말리고 떨어내느라 바쁘기만 하다. 하나둘씩 모아져서 한아름이 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농작물들을 거둬들이는데 쓰이는 농기구들도 그 쓰임새에 맞게 고안하고 발전시켜왔다.
특히 고구마를 캐는 농기구는 고구마 줄기를 심는 농기구만큼이나 재미있다. 고구마를 캐어낼 때는 고구마에 상처가 나거나 잘라지지 않도록 호미로 흙을 살살 걷어내면서 캐곤 했는데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니었다. 쉽게 캐내기 위해 삽으로 고구마 밭두둑을 잘못 팠다가는 고구마가 잘라져 나오거나 상처 나기 일쑤였다. 상처 난 고구마는 겨우 내내 저장할 수가 없었다. 상처 난 곳을 따라서 썩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고구마에 상처를 내지 않고 캐낼 수 있는 포크처럼 생긴 농기구가 고안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힘도 덜 들이고 상처도 내지 않으면서 고구마를 캘 수 있게 되었다.
고구마나 땅콩, 들깨나 참깨는 걷어 들여 알맹이들이나 낱알들을 캐거나 떨어서 모아지면 따사로운 햇볕에 물기를 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말리지 않고 모아두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자체 열이 발생하면서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날씨가 그렇지만 가을에는 하늘이 맑다가도 어느새 먹장구름이 생겨나서 갑자기 비가 내리곤 하였다. 그러므로 한시도 하늘의 변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라도 먹장구름이 생겨나고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면 말리려고 밖에 널어놓은 곡식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비가 내려 곡물들을 적시게 되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었다.
조금 있으면 우리겨레의 삶을 지탱해 온 벼를 거두어들이게 된다. 가을이 되면 가을 날씨는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리 가물어도 거둬들이는 날 하루만 참아달라고 염원했듯이, 날씨가 좋아서 거두어들이는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시설창조관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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