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꼬마 시인들, 가을을 낭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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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꼬마 시인들, 가을을 낭송하다

  • 승인 2016-10-11 11:53
  • 신문게재 2016-10-12 22면
  • 이준희 보령청소초 교감이준희 보령청소초 교감
▲ 이준희 보령청소초 교감
▲ 이준희 보령청소초 교감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간질이며 살랑살랑 가을 바람이 부는 아침 나절 혹은 맑고 고와서 가만히 어루만지고 싶은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비출 때면 윤동주의 '서시'를 낭랑하게 읊거나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게 된다.

가을 감성은 시 낭송과 참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시집에 손길이 가곤 한다.

나태주 시인이 '시란 자연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무더운 여름 지나고 주위에 변하는 자연의 모습들은 딱딱한 우리의 감성을 깨우고 얼어붙은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해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한때는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시를 쓸까?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들이라는데 그렇게 특별한 재주나 능력을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지 않았으니 나는 못해' 포기하고, 시 쓰기 대신 시 읽기를 하면서도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옮겨 적는 시 필사와 시 낭송은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됐다.

'시 쓰기와 똑같은 무게로 시 읽기 역시 진검승부'라는 김사인 시인의 글을 읽고는 더더욱 이 가을, 시 필사와 시 낭송을 열심히 한다.

나는 시를 낭송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시를 눈으로만 읽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시를 낭송하면서 움직이는 내 입의 느낌, 청각으로 울려 퍼지는 가벼운 진동,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이런 총체적 감각들이 처지고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팽팽한 긴장으로 곧추 일으켜 세우는 느낌이다.

이럴 때는 내가 시를 안 써도 나는 시인이 된다.

참 신기한 건 나는 시를 낭송하는 그 순간 내가 정말 착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고마운 게 많은지 삶이 감사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 날마다 만날 아이들이 있다는 것, 부모님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살아 계신 것, 슬프거나 기쁠 때 함께 나누고픈 친구가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눈물겹게 고맙다. 시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순하고 곱게 보는 시선을 갖는다는 의미다.

우리 아이들이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 여기고 파닥거리며 나는 것을 보고 춤추는 것처럼 느끼는 시의 순간을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또 바닷가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를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다 하고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뜨는 법이니까 그 달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가을 햇살에게 말을 걸고 흙냄새를 맡으며 파란 하늘 구름에게도 인사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시적 감수성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시 낭송은 그런 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학교에서 지도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아침에 등교를 한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너도나도 시집을 꺼내 시를 낭송하는 모습, 내가 꿈꾸는 교실의 모습이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늘 보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기교 부리지 않고 언어를 잘 섬기면 그 사람이 시인이란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단풍나무 아래에서, 숲길을 걸으며 가만가만 시를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꼬마 시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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