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홍준 전 청장이 강연을 하고있다. |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백제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새로 지어진 궁궐을 보고 고려 중기 역사가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국에서 문화 유산 답사 전성시대를 이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유 전 청장은 8일 부여문화원에서 충남문화재단의 '이제는 금강이다' 프로젝트 두 번째 날 부여 탐방을 위한 인문학 콘서트 강사로 나서 부여로 대표되는 백제문화의 아름다움을 설파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그의 강연 중 참석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환호와 플래시 세례를 받은 말이었다.
강연에 따르면 금강을 끼고 발전한 부여는 한국 4대 고도(오래된 도읍이 있었던 지역) 중 하나로 금강과 부여의 이야기는 한반도 전체의 역사를 상당부분 포괄한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벽화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유 전 청장은 이를 두고 “고대 부여국과 고구려에서 백제까지 한 정서를 공유하는 한 핏줄이었다”는 분석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말로만 전해진 백제문화가 지하에 묻혀 있다가 지상으로 나왔다. 4000여 점의 유물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풍습 중 하나인 장례문화와 관련해 돌방흙무덤이 백제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왕의 이름이 적힌 무덤이 발견된 것도 큰 성과였다.
신라 문화로 대표되는 경주 시내에는 155개의 무덤과 6개의 금관이 발견됐지만 이름이 적힌 것이 없다. 그러나 무령왕릉에서는 돌판 지석이 나왔다. 내용은 '무령왕과 무령왕비는 이 자리에 무덤을 쓰기 위해 토지신에게 2만 냥을 주고 매매를 합니다'라는 매매계약서 형식이다. 2만 냥 역시 함께 발굴됐다.
유 전 청장은 이런 사실과 함께 “이 시대 사람들이 땅이라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탑으로 꼽힌다. 이 석탑은 1층이 위층에 비해 커 상승감이 있고 키가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1층 탑의 높이는 2층과 5층을 더한 것과 같으며, 3층의 두 배 값과도 같다.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교만의 조형물이다.
정림사를 설명하면서 유 전 청장은 “백제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면 정림사를 복원하고 거기에 스님이 살고 있어야 한다”며 “사찰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제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만 직접 볼 수 있다.
구슬을 턱에 낀 봉황과 상상의 동물들, 악사, 산길과 시냇물, 폭포와 호수 등이 입체적으로 표현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실제 향을 피우면 봉황의 가슴과 산봉우리 사이사이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라 신비한 느낌을 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백제 금동대향로 시연 동영상과 사진 등을 박물관에 함께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 전 청장이다.
유 전 청장은 금강과 부여에 대한 강연을 마치면서 “한국은 중국 바로 옆에 있어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나라들과 비슷하거나 더 크다”며 “실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또 백제 의자왕이 일본 내대신에게 보낸 바둑판과 바둑알이 너무 아름다워 현재 일본에서는 국보급으로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종원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날 인문학 콘서트에 앞서 “강은 생명의 원천, 문명의 원천, 삶의 한 부분으로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금강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하며 “그런 금강과 함께 발전한 부여는 과거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자 상징이다”고 설명했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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