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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문자이다. 합리적인 한국어 문자에 비하면 로마자의 구성원리는 원시적이다. 모양만으로는 자음자와 모음자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단추마다 섞인 순서대로 글자를 배분 할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에 로마자를 사용하는 서양권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뜻글자를 사용하는 한자문화권 중국에서는 어려움이 더욱 많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 우리나라 휴대폰을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닌 베트남, 태국, 인도 등 여러 나라에도 한류열풍을 타고 휴대폰 수출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럴 경우 우리 한국어까지 끼워 함께 수출하면 국제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본다.
1800년대 세계적 해양강국인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표기해 사용했다. 그러자 베트남 전체가 로마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마자가 베트남 고유어보다 더 편리하고 사용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많은 선교사들과 민간구호단체, 한국어 교수, 한국어지도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파견되어 그 나라에 살면서 주민들에게 선교활동과 주민봉사를 하고 있다. 예전 못사는 우리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세계 각국에 널리 퍼져있는 민간외교사절을 적극 활용 우리의 한국어를 세계만방에 가르쳐 수출을 해나가자. 그리하면 아마도 우리 한국어 수출강국은 가능 할 것이다.
한국어는 세계 모든 언어학자들로부터 ‘고전적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단순하고 효율적이고 세련된 한국어 한글 알파벳은 가히 세계적 알파벳의 대표적인 전형. 한국어가 인류의 위대한 문자유산인데도 우린 진정한 우수함과 그 위대함을 모른다.
한국어를 사용하면 평범한 하층민족이요, 영어나 프랑스어, 일어, 중국어를 유창하게 잘 하면 인텔리나 유식한 부류에 속한다는 사대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더러 주변에 있다. 나를 먼저 알고 상대를 알아야 하지 않는가?
“자기 나라의 말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남에 나라 말을 배우려 하는 것은 못난 우민(愚民)이나 할 짓이다!”
나의 『한국어 사랑』은 지난 스무살 문학청년시절(文學靑年時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시절 한 때 책과 허무와 갈등으로 시름하였다. 데. 칸. 쇼 (데카르트, 칸트, 쇼팬하우어)에 빠져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방황하였다.
1980년대. 서울에서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당시 훌륭한 분들을 만났는데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홍어의 작가 김주영 선생님, 시인 이근배 선생님, 시인 서정주 선생님, 시인 정한모 전 문공부장관님, 연세대의 신동욱․마광수 교수님, 서울대 구인환 교수님, 한국교원대 성기조 박사님, 국문학자 이숭녕 박사님 등이 그렇다.
깊은 사유(思惟)와 너른 문학의 강(江)으로 인도하여 주신 저 유명한 ‘보리밭’의 저자 박화목 동시작가님, 설창수 시인님, 김태호 소설가님, 송병철 수필가님, 나태주 시인님, 구재기 시인님, 제2정무장관이었던 조경희 수필가님, 경희대 서정범 박사님(국문학자), 인천대 오창익 교수님 등이 고마운 문학적 은사님이시다.
이 가운데 이숭녕 국문학자를 만난 것은 지금의 한국어 전문작가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회 모임이 끝나면 연로하신 이 박사님 부부를 청량리 집에 까지 자주 모셔다 드리곤 했다. 말씀이 어둔하셨지만 유달리 우리말 한국어를 사랑하셨다. 그 당시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였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국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한국어 관련 저서를 4권이나 발행하였다. 그리고 각종 지면에 ‘한국어 자료’를 소개하였더니 이제는 ‘한국어 나들이 작가, 우리말의 달인 작가’로 통하고 있다. 그만큼 몸소 우리말을 실천하고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국어 사랑으로 나라의 얼과 민족의 자주적인 정체성과 고유의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나름대로 30여년 노력하고 있다. 일찌기 나 자신이 몸소 한글사랑을 실천하고자 슬하의 자녀들 이름도 순수한 한글로 지었다.
큰 딸의 이름은 ‘바램’이다. 앞으로 좋은 세상, 아름다운 사회에서 잘 성장하여 잘 되기를 바랜다는 희망의 뜻이다. 둘째 딸의 이름은 ‘나아’ 이다. 잘 나아가서 국가와 사화에서 바라는 사람으로 잘 나아가라는 뜻이다. 어디 그 뿐인가?
또 아호(雅號)가 ‘나은’이며 ‘길벗’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여 나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자는 뜻이다. 독일의 구름의 시인 ‘헤르만 헷세’가 구름을 좋아 구름을 찾아 길을 떠나듯 나도 애로라지 한글 나그네가 되어 정처없이 길가를 따라가며 한글속 길벗 인생으로 살련다. 애호박잎처럼 순진무구하게 걸어가자는 그 길손이 바로 나의 아호인 길벗이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의 아호도 ‘그루터기’이다. 농촌의 들에서 벼 포기를 베고 난 후에 그 자리에 푸르게 새싹이 돋아나는 시작과 청순한 약동의 의미가 있는 그런 그루터기이다. 그루터기에서 파아란 새순이 돋아나듯 밟아도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한국어 그루터기’와 ‘나은 한글’ 로 수 억 겁 년을 살아 가련다.
십 수 년 전 부터 우연히 시작된 ‘한국어 사랑’ 은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살아야 국가와 민족의 얼이 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우리 한글, 대~한민국 한국어 최고, 대~한민국 한국어 수출……!”
/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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