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지난 시절 한때는 이러한 행정이 공정한 것인 줄 다들 믿었다. 게다가 심의위원들을 보호해야 하므로 위원별 채점표는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채점표 비공개는 예나 지금이나 타당하다. 그렇다고 지원 심의 결과를 통째로 심의위원회로만 돌리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은 없다'는 것. 행정가들은 제도와 시스템의 마련과 운영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더 이상 따지지 못하도록 심의위원회 뒤로 숨었다. 책임이란 소재가 분명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소재를 실종시켜 버렸던 것.
결국 공정하지도 못한, 책임도 지지 않는, 소신도 없는 행정이었다. 그럼 어쩌라는 것인가? 행정가들이 심의에 무슨 영향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 그런 뜻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심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심의위원회가 마땅히 지되,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모든 프로세스에 대한 책임은 행정기관이 져야 한다는 뜻. 즉 기관에는 합리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고 또 바르게 운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세스의 열매가 바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심의 결과에 대한 잡음의 원인이 프로세스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문화예술기관이 이러한 잡음을 다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문화예술에 처음부터 내재하는 모호성(ambiguity)과 기호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숙명 때문이다. 완성된 문화예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함께 보고도 서로 일치하는 평가가 많지 않은데, 서류나 인터뷰에 의한 평가는 오죽하겠는가. 문화예술의 이러한 숙명적 특수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훌륭한 문화행정가의 첫 덕목이다.
따라서 심의 결과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지적이나 비판, 원성이나 불만은 일부 신청자의 극단적인 억지를 빼고는 대개 행정 프로세스의 잘못이다. 합리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잘 운영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필자가 근무했던 대전문화재단이 2012년 초부터 운영한 지원 심의 제도와 시스템은 문화예술의 모호성, 서류와 인터뷰와 같은 이른바 '계획'에 대한 사전 평가 방식의 본질적인 한계 등을 먼저 이해한 바탕 위에 탄생되었다.
골자는 이렇다. 첫째, 분야별 심의위원 7명이 상호 질의응답과 토론을 하되 지원 당락에 대한 의견은 내지 못하게 하며, 이에 흔히 나눠먹기와도 같은 합의 후 짜맞추는 요식적 채점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둘째, 위원들은 토론 결과를 참고하여 각자의 경험과 식견 등 전문성에 따른 자율·독립 채점을 하되, 탁월·우수·보통·미흡·저조 등 절대평가를 하게 한다. 셋째, 불완전한 '계획' 평가인 문화예술 지원 심의의 특성을 그대로 인정한 후 전문가 모니터링 등 과정 및 사후 평가의 강화를 통해 보완하고, 다음 심의 때 반영한다. 이러한 제도와 시스템, 프로세스는 문화예술 지원 심의의 훌륭한 모델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위원들 간 아무런 의견 교환없이 독후감 심사처럼 하는 채점제는 신청자의 예술을 접해보지 않은 분야별 3명씩의 지역 외 위원들에게는 특히, 서류 작성 자체에 대한 평가 아니면 거의 주사위 던지기이리라. 이런 프로세스는 결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이에 문화예술계의 불신은 불 보듯 뻔한 일. 또 전문가 현장 모니터링이 아닌 사전 인터뷰에 온 행정력을 다 쏟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큰 도로(徒勞)이며, 이에 호랑이 잡으러 가서 토끼 모는 꼴. 채점은 제대로, 인터뷰는 필요한 것만 해야 한다. 문화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는 공모 사업 지원 심의에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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