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동물은 이렇게 생존의 위협을 미리 느끼고 반응하는데, 온갖 계산과 욕심으로 둔해져 버린 인간의 감각은 당장 기와가 내려앉고 담장이 무너져 내리도록 서로 헐뜯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나 보다. 폭염이니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친절한 재난문자도 진짜 재난 앞에서는 먹통이었으니 말이다.
계속되는 여진의 두려움 속에 이제는 잦아들고 있다는 소망 같은 예측을 하며 한반도가 결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과거 기록에도 있다, 울산 단층이 어떻고 양산 단층이 어떠어떠하다며 연일 우리를 공부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처가 늘 그랬듯이 불안을 이겨내려고 관련 지식을 들이 파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절절한 마음이 든다, 제발 사후 약방문이 아니기를.
북한이 핵개발에 속도를 붙였다느니,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느니 떠드는 요즈음 폭죽 터지는 소리만 세게 들려도 쫓아나가 하늘을 보게 되는데 땅까지 흔들리고 있으니 어디에 의지하고 살아야 할지 참으로 불안하다. 애국가만 믿고 산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요새 하늘땅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일명 '김영란법'의 시행을 코앞에 두고 여기저기 어수선하다. 정부나 공공기관 및 산하단체,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단체,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국공립/사립 교육기관, 언론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배우자들까지 약 400만명이 관련 지침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니 규모가 작지 않다.
대학에서 이런저런 세미나나 행사를 준비하며 혹시라도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소한 것까지도 검토하고 알아보느라 번거로워졌다. '통상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사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안정하고 영 수선스럽다. 하긴 공무원들이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공무원들이 부패했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런 풍토를 쇄신하려면 지축을 흔들만한 규모의 법적 심리적 지진(?)을 견뎌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관련 범위가 적당치 않다느니, 빠져나갈 틈이 있다느니 서로 다르게 부딪치는 입장이다.
물론 걱정은 된다. 뜻은 좋지만, 법망을 피해 더욱 머리를 쓰는 큰 부정은 잡아내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의 업무 진행에만 융통성 없고 까다로운 영향을 미치면 어쩌나, 그나마 자질구레하게 정(情)을 나누던 문화가 더 까칠해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필자도 대학에 있으니 관련 사항도 전달받고 설명도 듣지만 바빠 죽겠는데 또 뭘 숙지해야 하나 짜증부터 났으니 말이다. 학생이나 교수나 서로 평가를 주고받는 대학 사회에서 직무관련성 부정의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음료 한잔도 주고받으면 안 되지 않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부정청탁을 막고 청렴한 사회풍토를 만들겠다는 제안이었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이니 잘 지켜지면 더없이 좋겠다.
온통 흔들리는 이 세상, 어찌 살아내야 할까. 지진 위험이 있다 해서, 핵 공격의 위협을 느낀다 해서, 법적 통제가 많아진다 해서 지금 내가 어떻게 다르게 살겠는가? 그저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땅을 한번 밟고 하늘 향해 두 팔을 펼치며 깊게 숨 쉬어 보자. 그 안에 우리가 품고 살아야 할 세상이 있지 않은가.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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