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자료원이 2003년 발행한 계서야담 표지. |
계서야담(溪西野談)! 편찬 연대는 1833~39년으로 추정된다. 〈청구야담〉·〈동야휘집〉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야담집이라 일컬어진다. 야담이란 민간에서 떠돌던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들을 이야기꾼이 일차적으로 종합한 것인데, 조선 후기의 사회적·경제적인 변화와 관계된다는 점에서 전대의 설화와 차이가 있다.
<계서야담>에 실린 작품에는 제목이 없으며 각 작품들이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서사적 전개가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이 특색이다. 특히 권6에 실린 작품들은 매우 짧은 사건이나 사실을 지적하는 데 머물고 있다. 필자는 계서 야담에 실려 있는 글 가운데 조선시대 명(名) 재상 유성룡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말하려 한다. 문원 손창원님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유성룡(柳成龍)에게는 바보 숙부(痴叔•치숙)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콩과 보리를 가려 볼 줄 모를 정도로 바보였다. 이른바 숙맥(菽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숙부가 유성룡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했다. 유성룡은 실제로 당대 조선의 국수(國手)라 할 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아버지 항렬 되는 사람의 말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유성룡은 바보 숙부에게 초반부터 몰리기 시작하여 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나머지는 몰살당하는 참패를 했다.
바보 숙부는 대승(大勝)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 "그래도 재주가 대단하네. 조선 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았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
이에 유성룡은 숙부가 거짓 바보 행세를 해 왔을 뿐, 異人(이인)이라는 것을 알고 의관을 정제하고 절을 올린 다음 무엇이든지 가르치면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숙부는 언젠가는 한 중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자고 할 것인데, 재우지 말고 자기한테로 보내라고 했다.
실제 그 후에 한 중이 와 재워주기를 청하자 유성룡은 그를 숙부에게 데려다 주었는데 숙부는 중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네 본색을 말하라고 해 그가 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이 조선을 치러 나오기 전에 유성룡을 죽이려고 보낸 자객이라는 자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성룡은 죽음을 모면하게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의정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난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부르던 그, 異人(이인)이 위기의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다.
▲ 충무공 이순신과 서애 유성룡 영정/출처=국민뉴스 |
지금 우리나라! 세계 각국 우수대학의 우등생 자리를 휩쓸고 있는 나라. 그런데도 이인(異人)이 그립고 숙맥(菽麥)이 그립다.
백의종군(白衣從軍)한 이순신이 그립고 승복을 입은 채로 전장(戰場)에 뛰어든 사명대사가 그리우며, 군산 상륙한다는 헛소문 퍼뜨려 놓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피아(彼我)간 전사자를 최소화한 맥아더 장군의 전술이 그리운 것이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판국에 숙맥(菽麥)이면 어떻고, 이인(異人)이면 어떠하며 맥아더 같은 외국인 지도자면 어떠랴. 그 모두가 나라를 위하는 일인데…….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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