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박보검’이라는 사람에게 푹 빠져있다. 그가 잘 생겨서? 연기를 잘해서?
그에게 첫눈에 빠진 건 아니었다. 그를 처음 본 건 ‘응답하라 1988’이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였다. 그의 첫인상은 좀 어수룩해 보이고 하얀 귀공자 타입의 남자. 그랬던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젊은 출연진 네 명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프로그램에서 박보검은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로봇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의 끝말엔 ‘감사합니다’가 붙어 다녔다. 이래서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고….
도대체 뭐가 그리 감사한 것일까? 사실 ‘꽃보다 청춘’이라는 시리즈는 출연진이 갑자기 납치되어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되는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환경이 열악하여 고생 아닌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참여한 출연자들은 여행과정이 힘들다며 툴툴거리다가 여행을 끝마쳤을 때야 비로소 감사하다는 소감을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박보검이 출현했던 ’아프리카 편‘에선 시작부터 ’감사하다‘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출연하는 첫날부터 비행기를 놓치게 되고, 여러 가지 고생스럽고 불편한 상황에 놓였지만 아무 불평도, 원망도 없이 그저 얼굴엔 웃음을 가득 담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연신 해댔다. 좀 모자라는 사람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마중 나와 줘서 감사합니다’, ‘물을 줘서 감사합니다.’, ‘팬티를 사줘서 감사합니다.’ 등등 뭐만 해주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중엔 그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다른 사람들도 장난 반 진심 반 따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염이 되었는지 매사에 ‘감사합니다’가 입에 배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좀 지났건만 엊그제 본 예능프로에서도 박보검의 ‘감사합니다’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tv를 보는 내내 아름답게 보였다.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이 예뻤던 것이다.
도대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가 왜 이리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일까? 왜 모두 그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일까?
박보검을 보면서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었다.
3년 전.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급식당번이라서 학교에 갔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급식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급식을 받아가는 아이들 틈에 친구들에게 반찬을 퍼서 나눠 주고 있는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난 궁금해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왜 너는 밥 안 먹고 친구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니?”
“전 급식시간에 이렇게 알바하고 급식비를 면제 받고 있어요. 미리 경험해두는 거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학교는 자사고(자립형사립고)라 다른 일반고 보다 급식비가 비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공부를 잘해서 전액 장학금으로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줌마가 다 할 테니 너도 지금 친구들과 함께 먹어라”
“아니오. 금세 끝나요. 뭐 어때요? 친구들한테 이렇게 밥도 퍼주고 인사도 하고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도움이 되어서 좋구요” 라며 또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생들도 그 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한 마디씩 반갑게 인사를 하며 급식을 받아 가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알며, 감사할 줄 아는 아이었다. 배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고마웠다며 일부러 다가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나에게 각인되어있다. 그 기특하고 예쁜 아이의 맑은 미소가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저런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은 얼마나 보람될까?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며칠 전 이제 대학생 된 아들은 겨울방학 때 외국여행을 계획하고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던 날 일요일이라 손님이 너무 많아서 바쁘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주인집에 손님이 많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했다. 손님이 많아 힘들다고 하면서도 주인집에 도움이 되니까 감사하다는 그 마음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을 하며 살아간다. 세상을 이해득실의 관계로만 보고,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사회를 탓하며 지금 나에게 처한 현실을 원망한다.
나는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 최근 그 일 말고도 감사했던 일이 또 뭐가 있니?”
“응,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 나서 다리에 철심을 박았었잖아. 그때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했는데 얼마 전 신검 받으러 가서 느낀 건데 몸에 상처가 많은 애들이 너무 많더라. 이만큼만 다친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하더라구.”
사랑스러웠다. 이번엔 딸한테 물었다. “딸내미, 넌?”
“항상 감사하지.”
“뭐가?”
“엄마가 날 사랑하잖아,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
“그래?”
너무 풍족해진 요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0이 넘으신 어른들께서는 보릿고개를 거치며 힘들게 살아오셨기에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신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풍족한 생활에 젖어 감사할 줄을 모르고 부모님의 사랑에도 감사함을 표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국가에서의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러나 그러기엔 이 세상은 너무 풍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모자람이 있어야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 텐데 말이다.
이때 뜬금없이 나타난 박보검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전염 되어 이 세상의 기분 좋은 ‘감사 전염병’ 주의보가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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