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정숙 성환중학교 교장 |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은 아이들이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달콤한 수다를 떠는 등 할 일도 많은데 그 틈을 이용해서 내 방을 찾는 학생들로 교장실이 붐빌 때가 많다.
낯선 얘기처럼 들리지만 우리학교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의 주 고객들은 교장실과 같은 층을 쓰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이다. 물론 2, 3학년 학생들도 간간이 내 방을 찾는다.
교장실에 학생들이 방문하면 먼저 그들을 소파에 앉힌다. 예닐곱 명씩 떼를 지어 올 경우에는 내가 일어서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런 다음 학생들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 사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를 물어보며 제1단계인 이름외우기에 돌입한다. 이때 나의 머릿속은 학생의 인상착의 특징을 놓치지 않고 그 이름과 결부시켜 외우느라 무척 바쁘게 돌아간다.
짧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다음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난다.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아이들 손에 '자유시간'이라는 미니초코바를 하나씩 쥐어준다. 교장실 방문 덤으로 얻게 되는 달콤함이다.
그 다음 쉬는 시간에도 유리창 너머로 교장실 안을 살피면서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다. 이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통성명을 하고 나면,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닮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제2단계인 꿈 알아보기 단계에 이른다.
함께 온 아이들이 친구의 꿈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분명하게 장래 희망을 대답하는 학생도 있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도 많아서 좀 더 진지하게 숙고해보라는 숙제를 남겨준다. 착하게도 이런 숙제는 잘 해온다.
전교생의 얼굴을 담은 사진첩에는 나와 만났던 학생들의 이름 아래에 장래 희망이 깨알 같은 글씨로 덧붙여진다. 작년엔 3학년 남학생 두 명이 고입에 필요한 영어 면접 대비를 부탁해와 몇 차례에 걸쳐 모의 면접을 해 주었다.
그 이후로도 이들처럼 진학 상담을 청하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와 고교생활 준비며 졸업 후 진로 등 아이들의 미래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일도 있다.
또 한 아이는 자기 담임 선생님에게는 비밀로 해 줄 것을 요청하며 자기의 고민거리를 털어 놓았고 나는 그 아이에게 나의 귀와 품을 내 주기도 했다.
나의 열린 교장실은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장소다.
이름과 장래 희망을 물으면서 나와 익숙해진 아이들은 아침 등굣길, 교문, 복도, 운동장 어느 곳이든 언제든 눈을 마주치며 밝게 인사를 하고 또 명랑하게 학교생활을 한다. 학생들의 감정을 읽어주고 존중하며 관계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생활지도와 학생 상담의 절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유진아”, “미선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 그들은 아름다운 꽃이 되고 보석이 된다. “교장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라고 자기의 존재를 확인 점검하는 아이들이 많다. 제 이름을 미처 모른다고 “실망이예요”하는 아이, 또 이름을 불러줘서 “감동받았어요”하는 아이….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 석 자를 외우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닫힌 것을 여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고 헌신이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눈높이를 맞추며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참된 교육이 이루어진다.
초임교사의 열정으로 돌아가자. 영악한 직장인으로만 멈추어서는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고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다. 좋은 교육을 위해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가 자기헌신에 부지런하고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모두 함께 정진해야겠다.
채정숙 성환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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