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
선수 몇 명 이름을 아는 정도로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허구연씨와 하일성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TV의 야구 중계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어떤 유명한 선수보다 더 많이 보면서 나이를 함께 먹었다.
몇 해 전에는 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돈 문제로 소송에 엮였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유명인사인 만큼 재력도 있을 것이고, 가정도 원만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하던 터라 하씨의 자살 뉴스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기업경영을 얘기하는 칼럼을 읽다가 기업경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영리해야 하고 또 건강해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영리한 기업의 대표는 시류(時流)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벤처기업이고, 건강한 기업은 내실있는 경영을 하는 회사일 것이다. 영리함과 건강함을 모두 갖기는 쉽지 않은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영리함'보다 '건강함'이 더 중요하다고 그 글은 얘기하고 있었다. 부친이 일군 65년 역사의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동안 영리함보다는 건강함을 추구해 왔다는 판단이 섰기에 오랫동안 그 글이 마음에 남았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하일성씨도 남보다 뛰어난 언변과 엄청난 사전 조사를 했기에 수많은 야구팬에게 정확한 경기 해설을 할 수 있는 '영리'한 분이었지만 말년에 '건강'하지 못한 재정상태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그분이 건강했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크다.
그렇지만, 세상에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하일성씨만은 아니다. 요즘 법조계 비리(非理)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모든 직역에서 한꺼번에 터지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엄청난 공부를 해야 이룰 수 있는 직역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 중에 '영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기에 평생 쌓아 놓은 스스로의 명예를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몸담은 조직 전체를 욕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
건강하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의 사례는 노인빈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시절부터 힘들었던 분들도 많겠지만, 젊어서는 '영리'했기에 성공했던 분 중에 노후 빈곤으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이 매일 수백 명씩 모이는 장소인데, 이곳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왕년에' 고위공직자 아닌 사람 없고 큰 사업가 아니었던 사람 없다는 농 섞인 얘기를 듣기도 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늘더라도 길게 살아야 하는' 세상을 실감한다. 오래 살아야 하니 늙어서 험한 꼴 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늘고 길게 살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의 엄청난 성공과 일확천금이 내 인생에 방해될 지도 모르기에 단군 이래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매진하는 소위 '공시족'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는 현실을 탓할 수 없다.
리우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으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는 '나는 성공보다 성장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성공 뒤에는 실패가 기다리고 있지만, 성장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일성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죽을 때까지 조금씩 마음과 주변 여건이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우리 모두 오랫동안 영리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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