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순 소설가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난 ‘태무진’은 이름 석자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경청하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자신에게 짐이 되는 모든 것들을 쓸어내고 자신을 극복하는 그 순간 칭기즈칸이 된 것처럼 공 근식 씨도 꿈에 대한 열정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놀라운 성공신화를 썼다. 2004년에 늦깎이로 들어간 배재대에서 만난 고려인(러시아 주재 조선인) 교환교수의 권고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러시아로 건너가 한 달을 단돈 30만원으로 버티면서 기적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 1년 동안의 예비과정을 거쳐 3학년 때부터 전 과목 A+를 받았고, “화학변화를 고려한 우주발사체의 성능향상 계량화”라는 졸업논문이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공근식 씨는 가정사정이 열악해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수박재배법을 개발해 수박농사를 지어 두 동생을 모두 내로라하는 일류대학을 졸업시킨 뒤에 어린 시절부터 염원하던 물리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경야독으로 차곡차곡 실력을 다져 34세에 배재대 전산전자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공근식 씨의 삶을 오롯이 소개한 “자유로운 비행”에도 그가 겪은 숱한 역경과 한국인의 끝없는 도전정신, 근면성이 소개되어 있다.
잠시 고향 영동에서 쉬고 있는 공근식 씨는 8월 말에 러시아로 돌아가 9월에 대학원에 진학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극초음속(hi-hypersonic)분야 연구에 매진하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비록 대한민국이 아닌 먼 나라에서 살지만 저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많은 분들이 있어 한국인, 영동사람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애향심과 주민사랑이 남다른 박세복 영동군수는 공근식 씨가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의 지역소식 메인화면에 오르자 숨이 막힐 것 같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곧바로 공근식 씨를 초청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묵묵히 조국을 빛낸 노고를 치하하며 땀과 눈물로 성공신화를 쓴 공근식 씨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현지 생활의 애로사항과 선진 시책사업을 듣고, 취임 이후부터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체류형관광인프라구축”과 “선진교통행정구축” “맞춤형복지실현”으로 고향 영동도 멋지고 살기 좋은 고장이 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모름지기 목민관은 이래야한다. 존재보다 더 무거운 게 없고 죽음보다 더 가벼운 게 없다고 했다.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주어지는 시간만큼은 좋은 일에 쓰는 게 맞다. 박세복 군수는 과감히 탐욕을 버리고 불철주야 주민의 안녕과 지역 발전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이웃 아저씨처럼 따스하면서도 선비정신을 놓지 않은 듯 항상 꼿꼿해 존경스럽기만 하다.
박세복 군수가 매진하는 “체류형관광인프라구축”이야말로 영동을 살릴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정책이다. 산과 계곡밖에 없는 영동에선 관광산업육성 말고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난계 박연 선생의 삶과 음악, 악기에 대한 자료를 모아 DB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체험학습과 국악공연, 전통악기 제작 등 난계기념사업 모두를 디지털화 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 난계 박연 선생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고, 서양음악에 짓눌려 소멸해가는 우리의 전통음악을 되살린다면 영동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이다.
세계적으로 크게 회자되고는 있지만 한류가 진정 우리 음악인가? 우리의 전통 음악에는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깊은 사유가 담겨 있고, 서양에선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멋들어진 엇박이 들어 있다. 박세복 군수의 뜻처럼 난계 음악이 새롭게 조명된다면 우리 한민족의 얼이 세계 방방곡곡에 드높이 휘날릴 것이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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