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일보는 창간 65주년을 맞아 지역 출신 배우 정준호(46)씨와 인터뷰를 마련했다. 정준호씨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최근 MBC드라마 '옥중화'와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켈로부대장을 맡아 열연했다. 1995년 공채탤런트로 데뷔, 어느덧 연기인생 21년을 맞았다. 깔끔한 얼굴, 낮지만 밝은 목소리, 상대방을 향한 무언의 배려, 사랑의 밥차, 사람 관계, 배우인생, 마음의 정치… 지난 8월10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만난 배우 정준호와 마주 앉았던 1시간 40분 동안의 기억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관람객 66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호평과 악평이 오가는 영화, 주연도 아닌 조연임에도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작품의 재미와 퀄리티를 떠나 사실이었던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것에 주목했어요.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가장 힘든 전쟁이었다고 후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나름의 의지도 있었죠. 역할의 크기를 떠나 꼭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미래에 아들과 손자에게도 이 작품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서진철이라는 역할은 냉철하고 신뢰감 있는 켈로부대 대장이죠. 켈로부대는 군인이 아녜요. 민간인으로 지역지리 능했던 첩보원들이었죠. 영화를 통해 켈로부대가 재조명되고 있어서 감사하고 작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조연입니다. 늘 주연이던 배우가 조연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이가 먹고 연륜이 쌓이니까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미련 없이 욕심을 버려야겠더라고요. 길을 열어 놓고 앞서가는 후배가 잘 되도록 내 경험과 체험을 토대로 밀어줘야 해요. 쉽지 않은 결정이죠. 인기든 권력이든 내려놓는 건 쉬운 게 아니잖아요. 결국 배우의 내려놓음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이 세상은 나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매일 새겨요. 1년 365일 중에 내 생일은 딱 하루예요. 다른 364일은 남의 생일이니까 박수 쳐주는 조연과 단역으로 살아야 해요. '옥중화'에 윤원형으로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수라는 친구가 무척 당황하더라고요. '윤원형은 악역이고 조연인데 형님이 맡아주신다니 놀랍고 고맙다'고. 이젠 이렇게 받쳐줘야 하는 군번이 됐어요. 마음에 분명한 철학이 있으니까 주연과 조연, 역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덧 배우로 21년이 됐군요. 한길을 걷는 배우에게 중요한 마음 가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축복 받은 사람이에요. 데뷔하고 매년 작품을 하다보니 2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어요. 작년인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송윤아 씨를 축하해주다가 문득 나는 얼마나 됐지 생각했더니 같은해에 데뷔 했으니까 나도 20주년이었던 거야. 긴 시간을 돌아봤더니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촌놈이 서울 와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몰아쳤는지 인생을 만끽하며 살지 못했어요. 남을 위해서는 술도 마시고 경조사도 찾아다녔지만 정작 나 정준호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질 못했더라고요. 요즘은 조금 변하고 있어요. 담배는 끊고 술은 줄이고 나와 가족들을 위한 생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연기자로서는 이제 욕심을 조금 내려놨으니 다양한 연기가 하고 싶고, 삶에서는 중심을 잡고 즐기며 추억을 쌓아가려고요. 저는 언론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65년간 버텨왔던 중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중도일보의 역할이고 미래라고.
-현재 활동 중인 홍보대사만 100여개라고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비공식적이지만 기네스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홍보대사로 100여개 정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왜 홍보대사를 하느냐, 정치성향이 많아서도 아니고 결코 쉬운 자리도 아녜요. 연기자로써 받은 과분한 사랑을, 내 존재 값어치를 국민에게 재능기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연예인이다 보니 국민들에게 익숙하고 사람과의 관계, 유연성, 사람을 대함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나의 장점을 종합해보니까 홍보대사를 하는 게 두루 적격이라 여겼죠. 행사장에 가면 나는 봉사를 하며 보람도 느끼지만 두루두루 팬들과 만나서 스킨십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런 교류와 유대감은 현장에 있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100여개의 홍보대사 활동 즐겁게 응하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사랑의 밥차 그 시작이 궁금해요.
▲1998년부터 '사랑의 밥차'를 운영중입니다. 사랑의 밥차는 전복 요리전문가인 최성태 셰프와 공동으로 만들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최 셰프님 식당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 있었거든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분이 식당에 오셔서 식사가 하고 싶은데 엘리베이터가 없으니까 난감한 거예요. '장애인들도 식당을 자유자재로 다니고 싶다'는 고충을 듣게 됐죠. 아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분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만들어주자는 결론을 돌출하게 됐죠. 사랑의 밥차는 이렇게 탄생했어요. 미리 설문을 통해 먹고 싶은 음식들을 조사하고 차안에서 조리하는 전문화된 시스템입니다. 매주 실력 있는 셰프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해주셔서 음식 퀄리티도 상당히 높아요.
-예산 출신으로 고향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어요.
▲고향 예산에는 제가 초등시절 TV와 버스가 들어왔어요. 주변은 다 산과 개울이라 늘 자연에서 놀았어요. 그게 일상이었죠. 너무 깡촌이라 문화생활? 연예인을 본다? 이런 혜택이 전혀 없었어요. 동네에 여배우 정윤희 씨 운전기사가 살았는데 종종 정윤희 씨를 태우는 차를 끌고 고향에 왔어요. 우리 눈에는 운전수 아저씨조차 연예인과 동급으로 보이는 거예요. 얼마나 촌이었는지 알겠죠? 배우가 된 후에 고향에 문화혜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이 모교인 예산고등학교 축제 때 장동건, 이정재, 정우성, 유재석, 강호동씨 등등 당대 잘 나가는 톱스타들을 데려 가는 거였어요. 학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는데 어느 순간 군민축제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고향 어르신들, 후배들을 위한 문화적 보폭을 넓혀줬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믿어요. 시골에 자라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주 짙어요. 세상을 경계하지 않고 사람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준 곳이 바로 고향이거든요. 고향은 친구이자, 형제, 보금자리인 거죠.
-연예계 인맥 왕, 정준호식 인간관계 비법이 있나요.
▲사람과의 관계는 나를 낮추지 않으면 결코 이어질 수 없어요. 매년 경조사 화환만 1000여개가 나가요. 한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라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면 적극 돕거든요. 내가 작은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은 나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껴요. 그 마음이 호감과 신뢰로 돌아오고요. 사람을 사귈 때는 나를 내려놓고 가까이 다가가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내 앞에 좋은 사람이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는 만큼 오는 기브앤테이크. 인간관계는 이거예요. 조금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가장 좋아요. 적을 만들지 마세요. 너무 싫은 사람도 언젠가 내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오거든요. 전 거절을 잘 못해요. 만약 약속 중간에 누군가 연락이 온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을 내서라도 그 만남을 놓치지 않아요. 거절과 짬을 내는 건 아주 천지차이거든요. 바빠도 후자를 선택하죠. 인맥 넓다고 다들 놀라시지만 인간관계도 피나는 노력의 결과예요.
-스스로 밝힌 별명이 '정의원'인데 정준호씨 정말 정치 할 겁니까?
▲내가 가진 장점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일 거예요. 사람이 있는 자리를 꺼리지 않아요. 밥을 먹어도 소수보단 다수가 좋아요. 경조사가 생기면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가요.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먼 시골이라도 찾아갑니다. 모든 일에 앞장서고, 사람과의 관계가 좋다보니까 이런 저를 향해서 주변에서는 '너 정치해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세요. 저도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아 주는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반드시 정치를 하겠다는 마음이 갖고 있고요. 단, 지금은 아녜요. 정치는 마음먹었다고 선뜻 나설 수 있는 세계는 아니잖아요. 정치의 길을 가야 하는가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가 저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오죽하면 가족회의까지 열었을까요. 반응은 딱 반반이었고 지금은 아니라는 답을 얻었죠. 정치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왜 정치가 국민에게 불신임 받는지,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완벽하게 모든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을 때가 오면, 고향에 봉사하고 내 역할이 어디든 필요하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또 '네가 정치인 이상으로 넓은 범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배우라는 하늘이 내려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정치라는 제도권에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말하세요. 이 또한 맞아요. 제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전 지금 '마음의 정치'를 마음껏 실현중이에요. 정준호만이 할 수 있는 정치의 영역이 있거든요.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중도일보 독자와 대전과 충청민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중도일보 창간 6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고요. 부모님과 같은 지역민들에게 좋은 소식 많이 전할 수 있는 충청도 사나이가 되기 위해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중도일보, 충청도 파이팅! '대담·정리=이해미 기자·사진·동영상=금상진 기자
●배우 정준호는…
1970년 10월1일 생으로 예산에서 태어났다. 1994년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1995년 MBC 공채 24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대표 출연작품으로는 영화 '아나키스트', '두사부일체', '가문의영광', '거룩한계보' 드라마 '왕초', '루루공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아이리스', '네 이웃의 아내', '마마', '달콤살벌 패밀리', '옥중화', '인천상륙작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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