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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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

  • 승인 2016-08-23 14:28
  • 신문게재 2016-08-24 23면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8월 중순을 넘어서고 입추가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선뜻한 기운이 찾아들곤 했는데 올해는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상 예보에서는 다음 주부터는, 다음 주에는…. 말하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폭염이나 홍수 등 기후 재난의 뉴스가 이미 단단히 열 받은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학회에 참석하느라 주말에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기에 날씨를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떠날 날이 다가와 들여다보니 더운 지역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이 학회는 아시아 몇 개국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면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비교적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번에는 영 그렇지 못해 놀랐다. 더운 여름 더운 곳에서 학회를 열기로 한 결정이 잘못된 것인지, 주제가 흥미를 끌지 못했는지, 홍보나 운영 감각의 부족 때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여하간 이전과 비교해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학문적 관심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학회가 생기고, 또한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갖 지식에 접할 수 있고 강의도 들을 수 있으니 굳이 모여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기는 하다.

그래도 마음에 남는 것은 청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였다. 결코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닌 질문과 이에 대한 진지한 응답. 젊은이들의 발표에 나이 든 세대가 질문도 하고 보충하는 발언도 해주고 있었다. 공부에서 꾸준히 들이 파는 성실함과 겸손함처럼 좋은 자세가 또 어디 있을까? 아마 이런 자세가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노벨상을 받는 일본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근본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들었다.

괜찮은 학회이니 함께 가자고 한 친구에게 미안해서 제대로 투덜거리지도 못한 채 학회장을 빠져나오니 바깥은 온통 8월의 열기로 꽉 차 있었다. 서둘러 들어간 도심 시원한 빌딩 속에서 열을 식히고 인터넷에서 보았던 돈키호테숍을 찾았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최근, 대중을 향하는 표어에 돈키호테가 자주 등장하기에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일본의 24시간 할인점이다.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팔면서 우리가 익숙해진 가지런한 진열 방식과는 달리 창고처럼 쌓아놓고 판매하는 상점이라고 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자유롭고 엉뚱한 발상이 돈키호테와 같아서 상점 이름을 그렇게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들어가 보니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매우 많은 물건이 쌓여 있고 사이사이 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물건을 담고 있었다. 마치 오지 정글에 사는 원시부족의 영상을 보는 듯했다.

친구와 나는 체력에서도 밀리고, 채집 본능에서도 밀려 겨우 구경하고 일찌감치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일본 다녀왔다며 지인들이 준 자질구레한 선물의 고향이 돈키호테 상점이었나 보다. 와우, IT 강국의 국민답게 누군가 전한 정보를 한껏 활용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기가 센 민족답게 상점을 싹 쓸어올 듯한 기세로 구매에 열을 올리는 우리 이웃들. 조금은 지나쳐 보였지만 한편 생각하니 열심히 일하고 휴가받아, 가까운 외국에 가서 먹을거리 좀 사왔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요즈음 우리 세태라고 본다.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끈이 있는 자는 끈으로 저마다 제 배 불리기만 몰두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돈키호테숍에 갔으니 돈키호테 정신을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를 잘 살아내고자 구태의연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운 발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 뭐 그런 거 말이다.

삶을 꾸려가는 절대적인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처한 이 시점에서 자유와 절제가 균형을 이룬 삶을 진지하게 추구하면 좋겠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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